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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선·김외한씨 한 날 숨져…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 ..
사회

김달선·김외한씨 한 날 숨져…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 50명으로 줄어

김종용 기자 입력 2015/06/14 10:15

ㆍ김달선·김외한씨…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 50명으로 줄어




[서울= 연합통신넷, 김종용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같은 날 별세했다. 이들은 30분 간격으로 한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경북 포항에 사는 김달선 할머니(91·왼쪽 사진)가 지난 11일 오후 9시15분쯤 포항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할머니는 1925년 포항 북구 환여동에서 3남3녀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8세 되던 해인 1943년 어머니를 따라 포항 흥해읍에서 청어를 팔던 중 영문도 모른 채 일본 경찰에 끌려가 미얀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일본군들을 따라 전선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앳된 나이에 일본군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감내하느라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김 할머니는 1945년 해방을 맞아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쇠약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2년간 부산에서 몸을 추슬렀다. 1947년 고향 포항으로 돌아와 꿈에도 그리던 부모와 상봉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의 삶은 고국에서도 평탄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오빠와 남동생을 잃었다. 할머니는 혼자 포항과 영덕, 강릉 등을 오가며 생선과 채소 장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49세 되던 해 ㄱ씨(당시 50세)를 만나 잠시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놈들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친다. (일본군) 그놈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짓을 했다. 반드시 사죄를 받아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머니는 주위의 권유로 1996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이인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처장(51)은 “할머니는 병상 신세를 지면서도 문병 온 시민모임 회원들과 노래 부르기를 즐길 정도로 낙천적이었다”고 말했다. 발인은 13일로 예정돼 있다. 앞서 11일 오후 8시40분쯤에는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81·오른쪽)가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두 분이 한날 별세함에 따라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0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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