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 영업규제 적법 판결 ◆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규제의 정당성과 영업 자유 침해 등의 논란을 일으키며 4년을 끈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이 지방자치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6곳이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대형마트 승소로 판결한 원심(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원심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및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며 "소비자 이용 빈도가 비교적 낮은 심야나 새벽시간 영업만을 제한하는 것이고 의무휴업일도 한 달에 이틀이어서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영업) 규제의 실효성을 근거로 재량권의 남용을 인정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지자체들이 규제에 앞서 관련 이해당사자에 대한 의견 청취 등 규제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한 절차를 거쳤다"고 덧붙였다.
해당 규제가 외국 기업의 국내 서비스 공급량 제한을 금지한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등 국제협정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국가와 국가'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를 설정하는 조항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에 대해 효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쟁점은 이마트 등 원고가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에 해당되느냐는 것이다. 옛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매장 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이고, 식품·가전 및 생활용품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으로 정의된다.
원심은 "이마트 등은 점원이 구매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형마트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으나, 대법원은 "일단 대형마트로 개설 등록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별 점포의 실질을 다시 살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규제에 앞서 대형마트 임대매장 업주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대법원은 "전체 유지·관리책임을 지는 대형마트 개설자만 처분 상대방이므로 임대매장 업주에 대해선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에 입점한 병원, 사진관, 식당 등에도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을 강제할 수 있느냐는 점에 대해선 일부 의견이 엇갈렸다. 김용덕·김소영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지자체의 규제 대상은 대형마트 매장 중 규제 목적과 직접 관련된 '상품의 판매에 직접 제공되는 장소'로 한정돼야 한다"며 "이를 지원하는 '용역제공 장소'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창석·박상옥 대법관은 "법령의 문언과 대규모 점포 관리의 일체성 측면에서 규제 대상에 용역제공 장소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보충의견을 냈다.
지자체와 대형마트의 소송은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201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자체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항이 신설됨에 따라 '자치단체장은 오전 0~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월 둘째·넷째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공포하고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했다. 하지만 잇따른 소송에서 법원은 조례가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박탈해 위법하다는 취지로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영업제한이 정당한지보다는 조례의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한 판결이었다.
이에 지자체들은 영업제한을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조례를 개정했다. 이후 제기된 소송에서는 지자체들이 잇따라 승소했다. 대형마트 측은 옛 유통산업발전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이 각하되고 행정소송에서도 계속 패소하자 소송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는 '경제규제 행정'의 재량이 어디까지인지 판단한 최초의 판례다. 헌법 제119조 제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돼 있다. 다만 제2항에서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헌법 119조1항이 보호하고 있는 소비자 선택권과 대형마트 영업의 자유는 119조2항에 따라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1항이 기본원칙으로 2항을 앞선다고 보는 입장이 많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1항과 2항 중 어느 한쪽이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다"며 "경제규제에 관한 입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서 경제질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실천원리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공개 변론을 열어 각계 의견을 들었다.
하급심에서는 서울시내 17개 자치구를 상대로 한 6건이 대형마트 패소로 1심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용산구·중랑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형마트가 패소하거나 소송을 취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