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조경환 _공간 콘텐츠 프로듀서]한국 영화는 1980년대까지 만해도 사양산업의 대명사였다. 초창기 영화유입 시기인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小) 자본주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영화를 통해 한몫보려는 장사치였다. 그들이 만든 영화는 대부분 통속(通俗) 드라마들이었다.
일본에서의 흥행 정도를 보고 그것을 번안한 내용을 가지고 제작한 것이 다수였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 정서와는 맞질 않았다. 그들은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영화제작에 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단발성 투기자본에 불과했다. 대부분 영화제작 자본주들은 일본에서 건너 온 천민자본에 익숙한 일본인들이었다.
해방 후에도 한국 영화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자본 투자도 없음으로 문화산업의 기능도 하지 못했다. 또한 군사정권하에서 검열에 의한 영화 특유의 창의력 및 상상력에 있어서 표현 자유의 제약을 받았다. 1960년대 전성기였던 시대의 한국 영화를 보면 사회적인 비판을 소재로 한 영화의 경우 이야기 전개가 부자연스럽거나,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주로 점유했던 화류비련극이라고 불리웠던 멜로 드라마로 장르가 편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녹음인 아닌 성우가 후반작업을 통해 음성을 입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 만큼 성급하게 제작하고 급하게 흥행의 승부를 거는 소상업주의 경향이 농후했다. 따라서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이어가려는 체계적인 영화산업의 시스템은 전무했다.
그러나 90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케이블 TV의 등장과 함께 이에 따른 삼성영상사업단, 대우와 같은 대기업 자본들이 한국 영화시장에 유입되면서, 제작방향의 큰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영화라는 원천의 산업적인 가치를 통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구현을 위해 개봉영화에 대한 활발한 제작 투자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대기업에서 영화산업에서 철수를 하게 된 것은 과거 한국 영화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인 손익분기에 대한 왜곡이 심해 한계사업이라는 재무상 판정을 받아 사업을 접게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일제강점기부터 만들어진 단기제작의 관행이 대기업 구조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 당시 영화 제작 대자본의 유입되면서 이에 따라서 유능한 인재가 이 분야에 진출하고 또한 영화제작 촉진제로서 영화주간지의 발간 경쟁 등 영화매체의 다양화는 한국 영화 발전에 있어서 견인차의 역할하였다.
그 당시 한국 영화를 사양산업에서 일약 영화산업으로서 부흥시켜야 한다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 1995년 이후 한국 영화는 대기업의 거대 자본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국 영화 제작의 활기를 띠게 되었다. 르네상스(Renaissance, 부흥)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시대에 본격 접어들면서, 지역의 경쟁력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슈가 되는 행사 등을 만들고자 의욕들이 있었다. 이를 통해 도시 브랜드를 구축해서 도시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지들이 각 지역마다 무르익었던 시기였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 광주나 서울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실천과 실행의 의지가 가장 빨랐던 곳이 부산이었다. 한국 영화의 고도성장기인 1998년에서 2006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로서도 고도성장기였다.
그리고 부산에는 지역 최초의 시네마테크 부산, 영상위원회, 부산영화제의 전용상영관으로 운영될 목적으로 건립된 거대한 기반시설인 '영화의 전당'도 부산의 신도심인 센텀시티에 세워졌다. 부산이 국제영화제를 통해 그 영상산업 인프라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부산을 '창의도시'로서 도시의격(格)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한국의 제 2 도시인 부산에서는 획기적인 사건들이었다.
부산시에서 지나치게 타 장르의 문화 예술 콘텐츠보다 국제영화제만 치중한다는 지역 오피니언들의 의견도 있다. 그리고 영상산업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면서도 ‘영화산업은 없고 영화제만 있는 도시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부산시가 지역내 소재한 영상산업 인프라를 영화도시 특성화 전략를 펼쳐나가면서 풀어갈 문제일 것이다.
누가 이 거대한 문화행사인 국제영화제를 기획하고 출범시켰으며 또 실행했고 어떻게 아시아의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부산은 일제강점기인 영화의 초창기 그 중심에 있었다. 따라서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발상지인 부산에서 기획된 지역 콘텐츠로서 출발할 수 있었다.
부산은 1930년대 이미 남포동 일대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큰 영화관들이 형성돼 남포동은 영화 유통 및 소비지인 곳이었다. 이러한 '장소성'을 가지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부산'이 변별력을 갖춘 도시로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남포동은 한국 최초의 영화관인 ‘행좌((幸座)’가 있던 장소라는 상징성이 있다. 또한 남포동은, 부산 출신들에게는 부영극장, 대영극장, 부산극장, 제일극장 그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부산 영화의 메카였다. 그리고 이들 극장은 부산 시민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던 문화공간이었다.
이러한 부산의 지정학적 환경에 의해 타 지역에서 준비된 영화제들보다 빠른 속도로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깊은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수 있었다.
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부산의 경우는 그 장소로서의 이미지와 매력, 해안도시로서 문화관광 자원 그리고 각종 관광의 인프라 등을 이미 갖추어 있었다. 이제는 부산의 문화도시로서 이미지를 발신하여 부산시민들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국제영화제를 통해서 부산의 대외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수 있었던 여건이 성숙되어 있었다.
이러한 여건들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연착륙할 수 있었던 요소들로 작용했다. 여기에는 초창기 국제영화제 집행부의 슬기로운 노력과 지혜들이 가장 주효했다. 콘텐츠 기획은 '왜'하느냐 는 의미의 공감과 함께 그 의미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제도 축제다. '축제'는 다양한 이벤트도 제공하고 관객들도 직접 참여하여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축제 콘텐츠들이 밀착되면서 그 분위기를 향유하느냐가 성과가 관건이다.
그런의미에서 '남포동'은 그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부산이 국제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영상문화도시라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제고함에 있어서 장소성의 강화가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서 부산의 장소성에는, 그 배경에 있어서 한국 최초의 영화관인 ‘행좌’, 비롯 일본인이 설립한 아쉬움이 있지만 최초의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부산의 영화 제작에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부산이 국제영화제 개최 도시로서 그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남포동은 부산에서 영화관의 메카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장소로 인구 밀집지역이란 장점으로 1996년 최초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때에 184,071명이 유료 영화관람하게 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통헤 부산국제 영화제의 개최 당위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처음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러한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자들은 거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000년 제5회에 들어서서는 ‘컨테이너와 화물과 신발공장 이미지의 부산이 세계 영화도시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였다’(프랑스 르몽드지, 2000. 10. 28일자 보도)고 평가했다. 이는 초기 부산국제 영화제의 이미지 메이킹에 있어서 ‘아시아 영화 중심의 도시’라는 정체성이 정착되어 진 것이다.
부산이 국제영화제를 개최함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도시 브랜드이다. 도시 브랜드의 구축은 그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산국제 영화제의 성공 요인으로, 체류형 문화 관광 콘텐츠로서 최소한 1박 2일이 가능한 ‘부산’이라는 공간적 장점, 초기 영화제 집행위의 역량, 당시 부산시와 정부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국내외의 아시아 영화에 대한 고조된 관심, 지역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활동, 기타 다양한 부대행사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산’이라는 장소성이 갖고 있는 최초의 영화관, 제작사의 출발도시라는 영화제 주최의 당위성이 주효했다고 분석이된다.
그만큼 ‘부산’에서의 국제영화제 출범은 지역의 이미지투르기로서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부산국제 영화제가 다년간 개최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는 '남포동'과 '해운대'이다. 남포동 14개 영화관이 인근으로 있으며, 바로 앞에는 '자갈치시장'이다.'남포동'이나 '자갈치시장'은 관람객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또다른 행사 장소인 해운대는 야외 영화관이 5,000석 규모로 대규모 이벤트가 가능했다. 해운대 역시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영화인들과 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이 함깨 어울렸던 해운대 노상 포창마차는 그 유명세가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장소 마케팅이 이루어져 명소화되었다.
이곳 해운대에서는 부산의 ‘바닷바람을 느끼다’,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문화관광 콘텐츠로서 영화제 이미지가 정착된 것이다. 바로 '모두 함께 느끼면 즐길 수 있는 문화 관광형 참여축제'가 된 것이다.
해운대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진행하고, 남포동은 주(主) 상영관으로 근처 '해운대 시장', '해운대 포장마차',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 등이 행사장과 연계되어 있어서 관람객들에게는 영화상영이 종료된 후에 동료들과 함께 부산에서 보고, 먹고, 즐길 수 있었다.
이는 외부 방문객들을 유인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당일 보고 귀가하는 행사가 아니라 적어도 1박 2일은 체제해야 행사였기에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에 대한 기대효과가 컸다. 그런의미에서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을 체감할 수 있는 두 곳의 주행사장은 가장 축제로서 적격이었다.
특히 남포동은 유동인구가 부산에서 가장 많은 곳이어서 좁은 골목길에 방문객들로 가득찬 모습들이 영화제의 관객 확산의 효과에도 기대하게 영향을 끼쳤다. 메일 오후나 저녁 늦게 방송되었던 TV 영화제 특집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이 모인 두 곳을 비쳐지게 함으로서 '부산은 지금 영화로 뜨는 도시' 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화면이 비쳐지는 모든 곳이 방문객들로 가득한 광경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의 크게 주목받고 있음을 그 이미지 ‘기호’(記號)로서 역할을 했다. 남포동 부영극장에서 충무동 육교에 이르는 400미터의 도로에 ‘스타의 거리’, ‘영화제의 거리’를 조성하고, ‘영화의 거리’로 이곳을 부산시에서 정비한 것은, 그만큼 초기 남포동의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이었다고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역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를 높임으로서 정부와 부산시 예산 증액, 기업들의 부산국제영화제 협찬 및 기부에 있어서 그 여론 조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부산의 경제기반이 됐던 신발, 조선, 섬유 등 수출주도향 경공업이 1970년대 후반부터 하락의 길을 걷고 선진산업 구조로서 자구노력 부재로 지역경제의 침체현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부산시로서는 21세기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으로 영상산업을 주력정책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된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처음부터 홍보에 있어서 전략적인 접근방식이 매우 주효했다.
첫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둘째는 공중에 대한 홍보, 셋째,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홍보, 넷째는 미디어 홍보이다. 부산은행을 통해서 예매함으로서 노출 효과를 확대시켰고, 기념품 사업, 영화 시작 전이나 후에 감독, 배우들과 함께 하는 관객들과의 대화, 영화제 홈 페이지 개설, 안내책자, 옥외광고, 영화제 시작 2-3 개월 전에 각 언론사 영화담당 기자들을 모아서 영화제 전반에 관한 내용과 일정을 브리핑하여 영화제 라인업을 공개하고 사진과 보도자료, 비디오 및 영화 클립을 제공하고, 영화제 사후 기자회견, 영화제 기간 중 프레스센터의 운영, 기자 시사실의 별도 운영, 공식 Daily의 발행 그리고, 감독이나 배우 그리고 출품 영화 제작사의 이름을 내걸고 파티를 열어 화제를 유도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미디어 플랫폼의 활용은 마케팅에 주효한 효과를 가져 왔고, 이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중앙 언론매체들이 부산을 주목함으로서 지역언론매체에서도 영화제에 대한 호감도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기대효과로서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역의 부가가치의 상승효과, 방문객들에게 지역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개최지 주변의 상점 활성화는 상인들이 부산 여론을 주도하는 것 만큼 대단히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첫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기간인 1996년 9월 13일부터 9월 21일까지 주변지인 남포동과 광복동을 중심으로 행사장 주변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설문조사를 통해 매출액 변동효과와 성공여부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가 결과를 살펴보았다. 조사업체 대상 상가의 57.5%가 국제영화제 행사기간동안 매출액이 증가되었다는 점에서 상인들은 국제영화제를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역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를 높임으로서 이후 영화제의 지속성에 대한 공감과 부산시의 자체예산 증액의 여론 조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나아가서는 아시아영화를 발신하는, ‘영화의 바다, 부산’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영화제, 축제임에는 분명하다. 비경쟁영화제로서 영화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축제로서 즐기자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출발을 했다.
그리고 비경쟁영화제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제 3회부터는, 부산프로모션플랜(PPP: Pusan Promotion Plan) 같은 신인감독 지원 프로젝트,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운영 등을 통해, 국제영화제 유망감독 개발이라는 다른 국제영화제와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1년부터는 해운대 센텀시티 ‘영화의전당’에서 주행사장으로 진행했다. ‘영화의전당’은,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오랜 숙원 사원으로 1,679억 원이라는 막대한 건설비를 투여한 준공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부산 ‘영화의전당’은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 '쿱 힘멜브라우'의 설계안으로 2008년 10월 2일부터 2011년 9월29일까지 사업비 1,679억원(시비 1,078.5억원, 국비 600억원)을 투입하여 건립된 것이다. ‘
영화의전당’의 투자 외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회부터 2회까지 20년간 투입된 예산은 총 1494억 원에 달하는 만큼 영화제를 통한 부산시의 도시 브랜드 구축에 얼마나 많은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장소로서는 적합하다는 판단되는 ‘수영만’(낭만과 자연의 결합)과 ‘남포동’(관객의 집객 밀접도와 경제파급효과)의 문제점은 우천 시 대비책의 어려움과 해안과 인접 저녁에 상영되는 시간대의 추위, 그리고 남포동의 경우, 다수의 영화관이 참여하는 관계로, 일정 조정상의 문제점으로 영화상영의 비수기에 국제영화제 개최하고 활용해야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영화제 전용 상영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는 부산프로모션플랜, 시네마테크부산, 부산영상위원회, 아시아 영화아카데미, 아시아필름마켓, 아시아 태평양 연기자 네크워크, 아시아영화펀드 등과 연계하는 완성된 이미지로서 상징성이 크고, 이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분석의 결과였다.
부산영상센터인 영화의전당은, 전용관이 없어 영화제 기간 선정 및 영화관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 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랜 숙원사업이며, 부산시가 영상 허브 도시 기반을 구축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영화제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의전당’을 '플랫폼'으로 해서 영화제의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산영상센터인 핵심시설인 ‘영화의전당’은 지상 9층, 지하 1층의 규모다. 야외극장의 경우 5000천 규모의 영화제 개. 폐막식을 할 수 있다. ‘영화의 전당’으로, 영화제 행사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해운대 센텀시티의 중심에서 아시아 영화의 ‘허브’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영화도시의 부산’ 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영화의전당'은 구조 설계에 있어 외관의 미적(美的) 완성도는 탁월하다. 그러나 시설운영을 통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익형 부대시설은 매우 한정된 설계 구조이다. 이것은 건축 당시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지속적인 이슈 프로그램 개발이 피흡할 경우에 시설의 공동화(空洞化) 현상도 우려된다.
센텀시티 '영화의전당' 주 상영관의 장점은 영화제 기간 중에 스크린을 해운대 센텀시티에 집중적으로 배치해서 동선이 짧아 관객들이 여러 편을 보기 쉬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초기 부산국제영화제에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남포동'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회고하는 이들이 많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남포동에서의 영화상영 비수기 영화관 대관 등 매년 일정한 기간에 영화제 개최를 해야함에도 남포동 영화관 스케쥴에 맞추어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번 2018년 제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센텀시티에 위치한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CGV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메가박스 해운대,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소향씨어터 센텀시티) 등 약 35개관을 상영관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근처의 벡스코(BEXCO)에서 아시아필름마켓을 개최한다. 해운대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되는 비프빌리지(BIFF Village)와 메가박스 해운대에서 행사 및 영화상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부산국제 영화전용관인 ‘영화의전당’ 및 그 주변의 영화 인프라를 통해 더욱 세련되고 모두 참여가 용이한 영화제를 육성, 발전시키느냐는 것이 향후 영화제 발전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도약을 시키는데 있어서 그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경제사회학자인 기 소르망은 ‘예술창작자들 즉 미술가, 작가, 영화인, 가수 등도 그 어떤 국가 지도자보다 훌륭하게 서방에서 한국의 대사가 될 수 있다. 문화 없이는 훌륭한 국가도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겨야만 안다’고 했다.
문화와 경제과 결합된 글로벌 전략시대, 지역의 정체성을 돋보이게 하는 문화, 이러한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는 ‘문화와 경제의 조화’라는 부분에 있어서 향후에도 도시 브랜드 구축에 있어서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 세계 영화시장에서 ‘부산’과 ‘아시아 영화’의 허브로서 부산국제영화제(부산) 이미지를 구축함.
- 지정학적으로 숙박 체제 가능한 공간적인 장점, ‘영화의 바다. 부산’ 이미지 구축을 통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선도함.
- 청춘남녀에게 부산국제영화제(부산)에 대한 유인효과 이미지 확보함.
- 한국 영화 발전에 부산국제영화제(부산)의 기여도.
- ‘부산’이 영화(영산산업) 인프라를 통해 타 지방자치단체보다 월등한 경쟁력 확보 이미지 구축함.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부에서는 부산시의 신도심 중요 정책 중에 하나인 해운대 센텀시티 지역의 활성화에도 기여해야 하는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BHAGs: Big Hairy Audacious Goals)을 갖고 있다. 향후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과거와 같이 놀랄만한 영화제의 차별화된 글로벌 콘텐츠 기획들이 이어지기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