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규진기자]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에서 발사한 ‘1번 어뢰’로 인해 발생한 ‘버블 제트’가 88m 군함을 두 동강내 침몰시켰다는 천안함 사건. 40명이 즉사하고 6명의 승무원이 실종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됐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묻는다며 취한 ‘5.24조치’ 역시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역풍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 7년의 의문, 천안함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천안함 사건 발생 7년이 됐다. 칠흑 같은 초봄, 서해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초계함 파괴 사건이자 40명의 사망과 6명의 실종을 가져온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그렇게 됐다. 그간 진실을 밝히고자 무수한 갑론을박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교과서에 ‘북한에 의한 폭침’ 또는 ‘피격사건’으로 새겨넣었다.
2017년 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역사 교과서에 “2010년 3월 26일에는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아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고등학교 한국사》),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잇단 군사도발로 남북한 관계는 악화되었다”(《중학교 역사2》)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외교적 해법을 펼쳤으나 그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북한’ 소행으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주어가 빠진 ‘공격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사건을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버젓이 기록하는 현실. 과연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답답한 심정에 당시 천안함 함장이라도 불러놓고 의문점들을 한번 속시원히 따져묻고 싶은 마음이 어디 기자뿐이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최원일 천안함 함장을 상대로 공식적으로 따져물은 적이 있다. 다름 아닌 2012년 6월 11일 신상철 씨 10차 공판 재판정에서다.
“구조요청이 급박한 상황이었고, 해난사고의 총칭의 개념으로 ‘좌초’라고 이야기했다고 포술장에게서 들었습니다.”
“함정에서는 21시 25분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당시 소나로는 그 주파수 대역을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기변명들로 일관하고 있지만 여기저기 중요한 사실관계들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폭침 발표와 달리 최초에는 ‘좌초’를 사고원인으로 발신했고, 사고 시각 역시 최종 조사결과 21시 22분과 다르게 21시 25분으로 보고했다는 것. 더구나 당시 천안함이 장착한 소나(SONAR, 수중음파탐지기)로는 어뢰를 탐지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국방부 장관 등에 의해 고소된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인 신상철 스프라이즈 대표의 기나긴 재판과정은 그야말로 천안함 사건 진실공방의 무대나 다름없다.
최원일 천안함 함장을 비롯해 심승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이원보 2함대 22전대장, 천안함 통신장, 포술장, 부직사관, 좌현 견시병, 백령도 초병 등 핵심 군인들이 증언대에 섰고, ‘1번 어뢰’를 건져올린 쌍끌이어선 김남식 선장 등 민간인들과 민군합동조사단 등 전문가들도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했다.
1심 판결이 내려진 2016년 1월 25일까지 5년 6개월 간 47회의 지리한 공판이 이어졌고, 신상철 대표의 주장은 대부분 무죄로 밝혀졌다.
▶ ‘합리적 의문’을 취재하고 보도한 7년의 세월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중심에 《미디어오늘》 소속 조현호 기자가 있었다. 그런 그가 천안함 사건 7주기를 앞둔 시점에 그간의 취재와 5년 6개월간 이어진 천안함 관련 공판 기록을 정리하여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을 펴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초기에는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하루하루 터져 나오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그때 제기된 숱한 의문이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 하지만 정부의 굳건한 ‘안보 프레임’ 논리와 ‘음모론’이라는 딱지 붙이기에 부닥쳐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합리적인 의문은 점차 종적을 감추게 된다.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에 이의를 다는 사람들은 고소고발과 검찰의 수사 및 기소에 휘말려야 했다. 그중에는 7년째 재판을 받는 처지에 처한 사람조차 있다. 정부 발표에 이견을 제시한 신상철 전 민군 합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이 바로 그다. 그로 인해 천안함 사건 진실 규명의 공간이 언론의 장에서 법정의 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법정 공간을 취재하려는 기자는 없었다. 1심 재판에만 5년 6개월이 걸린 이 공판을 법정에서 현장 취재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린 이는 조현호 기자가 유일하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언론과 방송이 천안함 사건에서 눈길을 거둔 사이 우리 사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천안함의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정부 발표대로 묻고 지나가려는 사람이 늘어간 것이다. 그 결과 진실 규명이 안 된 내용이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신상철 전 위원의 1심 판결문조차 정부 말대로 북한 어뢰가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정에서 줄잡아도 60명에 달하는 증인의 입을 통해 나온 의문과 모순을 재판부가 그냥 묻으려 한 기색이 역력하다.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천안함 7주기를 앞두고 다시 한번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다. 5년 6개월간 이어진 공판 기록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노력 또한 진실 규명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다. 그렇기에 이 기록이 천안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의문을 추적해온 모두의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조현호 <미디어오늘> 기자가 천안함 사건 7주기를 맞아 내놓은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생각비행)은 이같은 신상철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천안함 진실공방의 전 과정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특별한 재판에 대한 특별한 기록인 셈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꾸준한 법정 취재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값진 기록이라 평가할만 하다.
흔히 기자들이 특종을 좇아 현안 취재에 뛰어들지만 그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으면 또다른 현안으로 메뚜기떼처럼 옮겨가는 것이 보편화된 현실을 감안하면 저자의 끈질긴 집중취재는 높이 사야할 것이다.
“‘문돌이’이지만 과학과 수학을 늘 그리고 동경한다”는 저자는 법정 공방을 기록하는 것 못지 않게 ‘천안함 사건의 합리적 의문들’과 ‘사건의 재구성’을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 지진파, 버블주기, 백색 흡착물 등 ‘머리에 쥐나는’ 숱한 논점들도 빠뜨리지 않고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은 무려 800쪽에 이르게 됐고, 결국 단숨에 읽어 해치우는 책보다는 두고두고 꺼내봐야 하는 천한함 의혹 사전 내지는 자료집 성격에 더 비중이 두어지는 것 같다.
섣부른 시나리오식 사고원인 추정이나 독선적 단정 보다는 의문점과 기록들을 따라 천안함 사건을 재구성하다 보면 자연스레 파고들어야 할 방향도 제시될 수 있는 법.
▶ 의문의 기록에서 진실의 기록으로
이 책은 2장 정부 발표와 결론에 대한 의문, 3장 어뢰폭발과 관련된 의문, 4장 천안함 사건을 육하원칙에 맞춰 사건을 재구성하여 제기하는 의문으로 분류했다. 해당 의문에 맞는 기록을 최대한 수록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5장 ‘천안함 끝나지 않은 재판’에서는 1심 재판의 첫 공판 출석 증인부터 마지막 출석 증인까지 거의 빠짐없이 법정 증언을 기록했다.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은 다른 취재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신뢰를 준다. 위증하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그 중압감 탓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위해 장난치지 못한다. 법정에 나온 증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입장과 다른 증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생존장병들 사이에서는 정반대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주요한 증언의 경우 질문 내용과 답변 내용을 함께 책에 수록했다. 그 결과 드러나는 사실이 있었다. 합동조사단에서 폭발을 연구했다는 사람들은 겉모습만 요란했을 뿐 북한 어뢰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 아는 양 국민에게 ‘북한 어뢰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장담했다. 법정 증언을 통해 군 조사책임자들의 무능과 부실함이 들통났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누구 한 사람의 입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법정 증언 속에 담긴 행간을 읽고 침묵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과정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5년 6개월간 이어진 공판에 출석한 증인 중 핵심증인이라 할 57명의 증언기록을 이 책이 충실히 반영한 까닭이자 ‘사건의 재구성과 57명의 증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으로 남은 말을 다시 구성하여 기록했으니 양이 많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7년간 보도한 기자답게 긴 내용을 꼭지마다 하나의 기사처럼 전달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6∼7장에서는 언론의 문제점과 아울러 천안함 사건 초기부터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묶었다.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의문이 있으면 그것을 해소하든가, 근거 있는 것이라면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7년간의 기록을 정리한 이 작업을 ‘미완의 결과물’로 규정하며 사건의 진실을 드러냈다기보다는 의문의 기록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정직한 평가이지만, 천안함 사건을 7년간 취재한 기자가 사건의 실체를 모른다고 고백하는 증언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의혹 사건을 대하는 현실을 명확히 증언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 사상 최악의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 한 사람에게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게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천안함 7주기를 맞으며 5년 6개월간 이어진 숱한 법정 증언을 정리한 이번 작업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밝혀보자는 재조사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의미이기를 바라는 저자의 문제제기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다투는 과정에서 명쾌하지 않게 남아 있는 의문점을 해소하고 의문의 기록을 진실의 기록으로 바꾸는 역사적 책무가 바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 공부하고 많은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며 “작은 의문 하나를 기록으로 남기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7년을 취재하고 쫓아다녔지만 나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대참사의 진실을 모른다”는 것.
그러나 기자도 저자와 나란히 법정 취재에 나섰던 최원일 함장의 증언은 물론 “해역 수심이 20m 내외”라는 박연수 당시 천안함 당직사관의 법정 증언(11차 공판, 2012.7.9) 등은 향후 진실규명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그러하듯 정부는 아직도 KNTDS(해군전술정보처리체계) 항적도나 TOD(열상감시장비) 동영상, 천안함 내 CCTV 영상 등 결정적 물증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살아있는 권력’과 그에 편승한 세력들이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가리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특종을 원하겠지만 묵묵히 모든 과정을 취재해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두는 ‘성실한 기록기자’가 존재함으로써 언젠가 누군가가 특종기사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KAL858기 실종사건은 김현희라는 ‘폭파범’의 진술만으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계기가 됐고, 2010년 천안함 사건은 ‘1번 어뢰’라는 물증만으로 한국이 북한에 ‘5.24조치’를 취해 남북관계까 완전 단절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두 사건 모두 유엔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세월호가 1,072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3월 23일로부터 사흘 뒤가 천안함 7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천안함 사건이 ‘1번 어뢰’로 덮여질 수 있다는 집권자들의 ‘경험’이 세월호도 덮여질 수 있다는 맹신을 줬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 7주기,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의 불씨를 지피는 조현호 기자의 『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