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疏通)이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사람들을 '몰입’(immersion)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축제’는 마음 속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제를 '설렘'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프랑스 외곽 남부지방 오리악,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다. 스키장 외에는 별다른 리조트 시설이 없는 이곳에, 1985년 창설된 오리악 거리축제로 많은 외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오리악은 관광산업이 발전한 프로방스 지역과는 달리 고속전철인 테제베(TGV)도 연결되지 않는 교통이 불편한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해 있지만 여름 평균의 기온이 아침 10도, 오후 한낮 20도라는 호조건으로, 바캉스 계절의 절정인 8월 중순에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프랑스 및 유럽인들의 욕구와 야외공연들의 축제요소를 적절히 결합하여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오리악축제는 지난 1986년, 광장을 중심으로 '관광객과 지역사회를 같이 묶어서 함께 향유하는 모범적인 지역축제'로 시작되었다.
참여극단만 국내외 포함 400개에 달한다. 150여개 극단이 참여하는 프랑스 샬롱축제와 함께 프랑스 최고의 거리축제로 명성을 얻었다. 큰 작품은 눈에 띠지 않아도 아지 자기한 야외공연들이 많아서 거리예술의 특징을 잘 살린 축제이다. 이 오리악축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모든 야외공연을 엿볼 수 있는 견본시(見本市)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커스, 광대극, 마임 등 참가 제한도 없다. 기자 등록자만 200명 이상이 참가하고 공연예술 관계의 바이어나 극장의 프로그램 담당자 등의 관계자들이 많이 방문함으로써 유사 축제 프로그램의 홍보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 일부 자생적인 밤 거리공연 외에 부대행사가 거의 없어서 축제의 변별력이 확실하며 프랑스정부나 지역의 문화기관의 연결도 오리악 축제 기간 중에 이루어진다고는 점이다. 이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역할분담을 통해 축제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 세금낭비가 되지 않도록 사전조율을 하고 있다.
오리악축제는 거리와 광장,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개인집 정원 등에서 하루 12시간에 걸쳐 전야제를 제외하고 4일간 펼쳐진다. 저녁에는 카페가 몰려있는 까르므 광장에서 프린지 음악인들이 펼치는 음악의 향연에 배낭여행을 온 유럽의 학생들이 열광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축제의 절정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많은 관광객들이 이 축제 기간 동안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혼잡을 이루지만 번잡함은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일상의 여유로움이 같이 결합된 이축제의 특성 때문이다.
지방분권과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프랑스의 정책당국 입장에 의해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한 오리악축제는 천막공연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무료공연인 만큼 이곳 오리악을 찾은 방문객들은 축제 분위기 그 자체만을 즐겨도 된다.
오리악축제를 방문하는 유효관객 약 15만명(이중 40%는 2년 이상 방문), 축제 기간 전후 1주간 약 30 km 반경의 모든 숙박업소, 레스토랑이 만원사례로 연간 시 재정수입의 30%가 이 축제기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의 이미지 제고 효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 축제를 후원, 협찬하고 있으며 축제예산 중에 국가 37%, 오리악 지방정부 63%를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오리악축제는 축제, 공연 기획자들에게는 새로운 거리공연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의 자리이기도 하다.
오리악축제에 참가하는 프로그램 400개의 국적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프랑스 380개, 기타 20개(벨기에, 스페인, 독일, 호주 등)이다. 대부분 프랑스 각 지역 거리예술가들의 향연이다.
아직도 오리악축제에서 기억되는 추억이 있다. 광장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중년의 지배인이 동양에서 온 낮선 이들에게 한 없이 그 지역에서 축제가 차지하는 비중과 주민들이 얼마나 축제 개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설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지만 강한 자강(自彊) 문화 관광도시인 오리악의 면모를 지켜볼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축제 절정, 이 작은 도시에서 제일 큰 학교 체육관에서는 아트 서커스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고 티켓을 사전에 구매해서 정문 앞 긴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정문은 열리지 않았다. 공연자의 공연 준비에 문제가 있어서 늦는 것 같았지만 긴 줄에 서있는 관객들은 아무런 항의가 없었다. 거의 2시간을 그렇게 기다렸다. 그 때 기다리던 한 관객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고 어느새 관객들 모두가 같이 휘파람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고 나중에는 그것이 합창이 되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기다림에 대한 짜증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들 스스로가 축제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은 아직도 추억되고 있다. 축제는 관객들과 함께 하는 '몰입'(沒入)의 미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오리악축제는 전야제 1일 포함, 본 축제 4일 총 5일간 20만 명이 모여든다. 1986년부터 미셀 크레스뺑(Michel Crespin)이 10년간 예술감독을 맡아왔고 1996년부터는 현재의 장-마리 송지(Jean-Marie Songy)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미셀은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수더분한 인상으로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비해 장 마리는 이지적이고 인상으로 카리스마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 장 마리도 미셀에게는 겸손하게 늘 예의를 다해 전임 예술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모습을 주민간담회 등 여러차례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