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 방송내용정리 이규진] 지난 2017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민이 격분해서 매주 촛불집회를 여는 상황에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령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20일 박근혜정부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공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 문건을 전날 국방부를 통해 제출받았다고 설명한 뒤 "주요 내용은 탄핵이 기각됐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문건이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을 단순히 검토한 것이 아니라 실행하려 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보는지에 대해선 "그것은 여러분이 판단해 달라"고만 말했다.
또한 이 문건이 당시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에는 "특별수사단이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내용"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에 이어 군 인권센터에서 공개한 기무사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3.) 문건에 따르면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등 상황별 발령권자, 증원부대의 지정과 배치, 계엄사의 편성과 업무 등이 망라돼 있다.
놀라운 것은 탱크와 장갑차 등 기갑부대의 배치와 공수부대 등 특수부대의 투입 계획도 계획되어 있는데, 이는 촛불을 들고 평화적 시위를 하는 일반 국민들을 ‘폭도 예비자’로 봤다는 것이다.
문건과 관련해 논란이 확산되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꾸려져 문건 작성 당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등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 전 사령관이 지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자신이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 19일, MBC보도에 따르면 조 전 사령관이 최근 군 출신 인사인 지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은 통화에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계엄령 검토 문건은 자신이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조만간 귀국해 특별수사단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일개 부대 사령관이 위수령.계엄령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혼자서 계획하고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수긍하지 못하는 주장으로 결국 조 전 사령관이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이 이른바 ‘총대’를 맨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는 상황에서 조사가 이뤄져야 알겠지만 조 전 사령관이 주요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한데 윗선의 지시 없이 자신이 단독으로 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문건에서도 나타나는데, 문건을 보면 향후 조치로 ‘철저한 보안대책 강구와 임무수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음’, 이런 표현이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아 검토해서 보고해 결재해 주면 이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의 주장처럼 본인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문건을 만들었다면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가 진행되어야 알겠으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면 기무사령관 독단적으로 이것을 기획하고 했다는 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란 것은 분명하다.
더 웃기는 것은 당시 중요정책회의에서 문건을 검토했고, 폐기됐다라고 주장한 것인데 폐기된 문건에서 ‘만전을 기하겠다?’ 이게 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기무사에서 위수령.계엄령을 월권으로 검토했고, 그걸 보고받은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이 ‘이러지 마, 이것 안 돼’하고 폐기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기무사 문건이 공개되자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쿠데타 흔적이 있다면 반드시 진상을 밝힐 사안”이라면서도 “문건 유출의 진상도 동시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김 대행은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전히 박근혜 탄핵을 울궈먹기하는 문재인 정권이 기무사 문건을 들먹이면서 적폐몰이를 계속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참으로 한국당스럽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김 대행은 “촛불시민.사회단체 사찰 문건과 기무사 세월호 관련 TF, 그리고 이른바 계엄령 문건까지, 꼭꼭 숨기기 마련인 정보기관 문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개된 게 유례가 없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든 계엄령과 쿠데타 흔적이 남아 있다면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계엄령 진상과 문건 집단 유출 진상을 동시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20대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한국당 김영우 의원도 기무사가 문건을 작성한 것을 두고 “기무사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친위 쿠데타 시도’라고 의혹이 이는 것에 대해선 “2008년도 광우병 사태하고 똑같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에서 “우리 군의 입장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했을 때에는 시위가 더 격해질 수 있겠다고 해서, 청와대 습격이나 무력시위로 행정부처가 공공의 안녕을 유지 못하고 치안이 극도로 무질서해졌을 경우에 군이 취할 수 있는 비상조치를 검토한 것”이라며 “이런 것을 하지 않는다면 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보기관, 특히 기무사의 경우엔 국방부 장관을 정책적으로 보조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면서 “이것을 마치 정권 탈취를 위한 쿠데타, 정권 획책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 기무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침소봉대식의 쿠데타 음모론”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당시는) 만약에 헌재에서 탄핵을 기각했을 경우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세력 간의 갈등, 나아가서는 물리적인 충돌도 예상이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 군은 대비를 자세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위수령·계엄령 발동) 검토 지시를 하거나 검토한 문건이 나온 것만 갖고 마치 군정을 획책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던 것처럼 하는 것은 정말 2008년도 광우병 사태하고 똑같은 것 같다”며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우기면서 미국 소가 그냥 쓰러지는 광경만 보고 미국 소고기 수입해서 먹으면 다 뇌에 구멍이 난다고 그러지 않았느냐”고 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주장인지 모르겠다. 기무사가 문건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면, 그 상황이 발생했다면 과연 또 어떤 주장을 했을지 궁금할 뿐이다.
기무사 특별수사단이 문건 작성자들을 소환조사하는 가운데 19일,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검토 문건이 아닌 '실행계획' 문건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고 기무사 개혁도 단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군인권센터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등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촛불 무력진압과 기무사 민간인 사찰' 토론회에서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령 문건의 성격을 검토하는 내용의 발제문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하 교수는 "누구의 지시로, 어떤 의도에서 작성됐는지 등 몇 가지 사실관계가 특별수사단의 수사로 확인돼야 문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뒀다.
그러면서도 "위수령 발령에도 경찰력만으로 치안확보가 곤란한 상황이 되면 계엄을 선포하고 구체적 증원부대와 담당구역까지 지정한 것으로 보아 실제 군부대 출동을 염두에 둔 실행계획이며, 계엄의 법적 요건과 절차에 관한 검토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계엄 시 정부부처를 감독하는 계엄협조관 파견, 보도검열단과 언론대책반 운영계획까지 마련한 것으로 미뤄 실행목적 하에 작성한 것이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건의 마지막 문구가 '철저한 보안대책 강구하 임무수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음'인데, 이는 상황 대비를 위해 작성하는 통상적인 업무상 검토문건이 아니라 실행계획임을 드러내는 문구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당시 야당 등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대해 관련 내용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한민구 전 국방장관의 주장도 내용의 구체성에 비추어 설득력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기무사의 사찰 의혹에 대해 "기무사에 대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위법한 행위에 대한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계엄령 문건과 민간인 사찰 의혹 등 기무사 수사를 두고 "경험이 부족한 군 검찰보다 민간 검찰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제수사와 압수수색 등을 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 소장은 정보 수집 범위 제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 폐지, 수사권 폐지, 기무사령관 민간 개방직 전환, 불법행위 처벌 근거 마련 등 기무사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감시와 통제 밖에 있는 기무사가 유지되는 한 군의 중대한 국가 범죄 행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며 "기무사를 해체하고, 일부 기능을 기존 군 조직과 정보기관에 통폐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기무사의 정치개입 여지를 차단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꾀해야 할 때"라며 "법안 개정 등을 통해 다시는 민간 영역에 기무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 11일, '기무사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의혹 특별수사단' 단장에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공군 대령)을 임명하고 오는 8월 10일까지 1개월간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사는 필요에 따라 연장되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장관에게 일체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17일, 기무사 특별수사단은'계엄령 문건' 작성에 관여한 현직 기무사 요원들을 줄소환 하는 등 고강도 수사에 나선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