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유병수 기자]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전제로 구체적인 계엄령 실행방안이 담긴 국군기무사령부의 추가 문서가 공개됐다. 소요사태를 대비해 단지 ‘검토’만 했다는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의 해명과는 달리, 서울 광화문·여의도에 장갑차(탱크)를 배치하는 것을 비롯해 국회·언론 통제 방안 등 매우 구체적인 실행안이 담겨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전격 공개한 이유를 “이 문건이 가지고 있는 중대성과 높은 국민적 관심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20일 설명했다. 그 이면에는 앞서 공개된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 ‘유사시를 대비해 계엄령을 단순 검토한 것을 지나치게 문제 삼는다’는 일각의 비판을 정면 반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우리 헌법상 계엄이 선포돼도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서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던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열어,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의 ‘대비계획 세부자료’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표지에 ‘군사2급비밀’ 도장이 찍혀 있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67쪽짜리 문건으로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네가지 큰 제목 아래 21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계엄령 검토 문건의 실행계획 성격이다. 헌법에 따르면 계엄이 선포됐더라도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이면 해제할 수 있다. 당시는 여당인 한국당 93명, 야당인 민주당 120명 등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자료에는 “당정 협의를 통해 (당시)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명시돼 있다. 이어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범 사법처리’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등 엄정처리 방침 경고문”을 발표한 뒤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라고 돼 있다. 야당 의원만으로 과반이 채워져 계엄 해제가 충분히 가능한 구조이다.
김 대변인은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보안 유지하에 신속한 계엄선포와 계엄군의 주요 (길)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런 구체적인 국회 상황을 검토해 기무사는 대책을 세웠다.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 문건이다. 국회의원을 체포해 의결 정족수를 미달시키는 폭압적인 방법을 세부적 절차와 함께 제시했다. 우선 집회 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하겠다는 경고문을 발표한다. 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총 9개 반으로 구성된 ‘계엄사 보도검열단’ 운영 계획도 마련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KBS·YTN 등 22개 방송 및 26개 신문, 연합뉴스·동아닷컴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 신문사에 대한 통제 요원을 편성해 보도를 통제하도록 했다”며 “인터넷 포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의 방안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사별로 (보도검열단) 몇 명이 어느 기관(언론사)에 가는지까지 나와 있다. 보도검열단은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사전에) 검열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불법시위 참석과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에 선다.
김 대변인은 “(이 문건에는)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 포고문이 이미 작성돼 있었고 통상의 계엄 매뉴얼과 달리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 요소와 검토 결과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미리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문·포고문은 2017년 3월 발표를 위한 것으로, 앞서 계엄이 선포됐던 1979년 10·26 사태와 1980년 5월 당시의 담화문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고 김 대변인은 밝혔다. 특히 이런 국회 대응 방안은 합참으로부터 받은 계엄령 참고 자료에도 없는 그러니까 당시 기무사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내용으로 알려졌다 .또 청와대 공개자료에는 ‘주한(駐韓)무관·외신기자 대상 외교활동 강화’ 항목도 있다. 김 대변인은 “우리나라의 각국 대사관에 파견돼 있는 무관(武官)단과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계엄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의 내용이 ‘외교활동 강화’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결국 기무사가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방안까지 제시한 것이다.
그는 “통상적인 계엄령이 어떤 절차를 거쳐 발동되는지 매뉴얼을 담은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과는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도 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군의 ‘통상적’ 매뉴얼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로 한 계획안이라는 혐의가 짙다는 얘기다.
‘대비계획’에는 국가정보원 통제 계획과 언론·출판·공연 등에 대한 사전검열 계획도 함께 명시돼 있다고 김 대변인은 밝혔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하고,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포고문도 이미 작성돼 있어
또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조치하는 등의 국정원 통제 계획도 포함돼 있다. 김 대변인은 "기타 합동수사본부 편성 및 유관기관 통제 방안에 국정원에 대한 통제 방안이 11번째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전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포고문도 이미 작성돼 있었고, 계엄사령부가 설치될 구체적인 장소까지 적시돼 있었다. 통상의 계엄령과는 다르게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대변인은 "(문건의) '국방부 비상대책회의' 내용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라며 "그와 함께 전국 비상계엄 선포 건의, 비상계엄선포문, 담화문, 포고문 등의 문서가 이미 다 작성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중요시설 494개소, 집회예상지역인 광화문과 여의도에 기계화사단,기갑여단,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엄업무 수행군을 전차와 장갑차 등을 이용해 신속하게 투입하는 계획도 세웠다.
이와 함께 김 대변인은 "주한무관단과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계엄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외교활동 강화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위법성, 실행계획 여부, 배포 단위 등을 수사해야"
김 대변인은 "청와대는 이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계획 여부, 이 문건의 배포 단위 등을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에서 통상의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되는 '계엄실무편람'의 내용과 전혀 상이함을 확인했다"라며 "계엄실무편람에는 통상적인 계엄령이 어떻게 발동되고 어떤 절차를 밟는지 등 통상적인 매뉴얼이 담겨 있는데 이 매뉴얼과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아울러 국방부 특별수사단도 이 문건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라며 "이 문건을 공개한 이유는 이 문건이 가지고 있는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국민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