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일본군 만행에 저항한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 구순..
사회

일본군 만행에 저항한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 구순 잔치

고경하 기자 입력 2018/11/09 21:15 수정 2018.11.09 22:48
우리들의 용감하고 당당한 평화활동가,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 올해 구순 맞아
이용수 할머니 / 사진 = 고경하 기자

[뉴스프리존,대구=고경하 기자] 대구시민모임은 대구시민사회단체들과 9일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구순을 축하잔치를 연다. 구순 축하잔치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나눔의 집,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 기억연대,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 거제시민모임,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 시민모임이 공동주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2007년 미 하원에서 역사적인 위안부결의안이 만장일치(滿場一致)로 통과됐을 때 청문회에 참석해 일본 제국주의 잔혹한 성범죄를 고발해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그동안 받은 상 / 사진 = 고경하 기자

해외 최초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을 비롯해서 뉴욕 시청에서 열린 전시 위안부 성범죄 규탄 집회를 했다. 유엔본부 활동 미국 최초 위안부 결의안 채택과 기림 조형물 건립이 결정될 때 결정적 증언을 했고 여성인권 운동가로 활약했다.

이날 행사는 이용수 할머니 ‘그녀, 용수’사진전과 1부 구순잔치, 2부 토크콘서트 ‘내 나이가 어때서’가 열려 이용수 할머니와 하객의 소통시간도 곁들여진다.

구순 축하시 낭송 / 사진 = 고경하 기자

이용수 할머니는 1928년 12월 13일 대구 고성동에서 태어나 16세 때인 1944년 대만에 강제동원 되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해방되던 해 귀국, 1993년 일본군 ‘위안부’로 등록하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1992년부터 현재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 참여했다. 2000년 인권국제총연합위원회 여성의 존엄을 위한 인권상 수여했고 2002년 한일협정 문서공개 소송 원고였으며 2004년 전쟁 피해자와 함께 하는 이라크 파병반대 전국 도보 행진에 참여했다.

그녀 이용수 / 사진 = 고경하 기자

2006년 미국 V-Day 주최, 여성폭력 STOP! 및 미국 샌트럴대학교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집회 참가했다. 2007년 일본정부에게 책임을 촉구하는 미국하원결의안 통과를 위해 미하원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2007년 7월31일 ‘위안부’결의안 제121호 만장일치 체택)했다.

2011년 12월 1,000차 수요 집회 중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만났다. 2015년 9월부터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기림비 설치 조례를 위한 공청회 증인 참석활동으로 샌프란시스코시 기림비 설치 조례 의회 통과에 기여했다.

이용수 할머니 역사 / 사진 = 고경하 기자

2016년 3월 미국 활동 중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만행을 증언하여 여성 인권을 증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LA 시의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에 대한 공로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미국서부 SF지회 이 취임식에서 감사패를 수상했다.

그동안 25년이 넘는 세월을 눈비를 맞으며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와 서울을 오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전 세계를 돌며 증언과 강연을 하며 일본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를 촉구했다.

이용수 할머니와 토크쇼 / 사진 = 고경하 기자

이제 피해자 해결운동을 넘어 지금 지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전쟁과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평화와 여성 인권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며 여성인권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위안부 청문회에서 증언 할 때 통역(通譯)하며 맺은 인연으로 10년 넘게 관계를 가진 가주한미포럼(대표 김현정)은 “이용수 할머니 구순잔치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다.” “할머니께 축하드리며 더욱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