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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최인훈 선생 추모공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문화

대구, 최인훈 선생 추모공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고경하 기자 입력 2018/11/17 02:34 수정 2018.11.17 08:16
희곡이 가진 명성만큼 공연 기법이 제대로 된 무대화를 기다리는 클로젯 드라마로 남아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공연을 마무리 인사 / 사진 = 고경하 기자

[뉴스프리존,대구=고경하 기자] 극단 연인무대(대표 김종련)는 우천소극장에서 최인훈선생 추모공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마당극을 지난 14일부터 15일까지 2018년 정기공연을 했다.

최인훈 선생은 6·25 전쟁을 고등학교 2학년, 12월, 원산항에서 해군 함전 LST편으로 전 가족이 월남했다. 삶의 근거를 뿌리 채 뽑혀야 했던 이 피난의 체험은 최선생의 의식에 깊은 상처로 각인되었다.

그의 삶과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비평가들은 이를 '피난민 의식'이라 불러 최인훈 선생의 문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의 하나로 보고 있다. 목포고등학교에 입학해 1년을 다닌 뒤,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으로 다시 돌아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달래와 아버지 / 사진 = 고경하 기자

대학에서 법학 공부는 최인훈의 정신적 요구와 맞물리지 못했고 1956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그는 등록을 포기한다. 이듬해 그는 군에 입대해 통역 장교로 근무한다. 장교로서의 군 생활은 1963년까지 7년 간 계속되는데, 그는 이 시기에 등단과 함께 본격적인 소설 창작에 들어간다.

1959년『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라울전이 안수길 선생의 추천으로「자유문학」지의 10월호와 12월호에 잇따라 실림으로써 등단 절차를 마치게 된 최인훈은 이후 장교라는 신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친다.

『광장』이 발표된 것은 등단 이듬해인 1960년 10월로, 4·19 혁명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광장』으로 일약 작가적 지위를 굳힌 최인훈은 『구운몽』『열하일기』를 잇따라 발표하면서 독특한 지적 사유의 문학을 전개해 나간다. 1963년 육군 중위로 제대하면서 그의 창작에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바우와 달래 /사진 = 고경하 기자

1964년에 발표한 『회색인』은 『광장』에서 시작하여 『서유기』『태풍』으로 이어진다 1973년 최 선생은 미국 이이오와 대학의 '세계 작가 프로그램' 초청으로 도미하여 4년간 미국에 체제한다. 미국 체류 중 써서 1976년의 귀국 직후 발표한 희곡『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는 희곡 창작에 주력한 최인훈 문학의 제2기를 여는 작품이다.

미국으로 가기 전 1970년에 발표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비롯 『봄이 오면 산에 들에』(1977) 『둥둥 낙랑둥』(1978)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로 이어진다.

바우의 청혼을 거절하는 달래 / 사진 = 고경하 기자

최 선생의 희곡은 클로젯 드라마 클로젯 드라마란 '읽기 위한 희곡' 으로 번역되는 것으로, 어떤 특징적 이유로 당대에는 공연이 보류되어 있는 작품을 말하는 용어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로 극작활동을 시작한 최 선생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로 극계의 주목을 받는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푹푹 찌는 여름, 말더듬이 아비와 함께 사는 산속 처녀 달래가 힘겹게 김을 매고 있다. 달래를 사랑하는 바우는 가을에 결혼해서 성 쌓는 먼 곳으로 떠나자고 한다.

달래는 아무 말도 않고 간절한 바우를 뿌리치고 간다. 깊은 산 속의 바가지처럼 생긴 굴에 들어가 사발과 바가지를 쓰다듬으며 눕는 달래 어미가 해 주었던 문둥이 때문에 놀란 소금장사 이야기를 떠 올리며 달래는 어미를 그리워한다.

사또의 후첩으로 보내라는 포교 /사진 = 고경하 기자

말더듬이 아비는 새끼를 꼬고 달래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 달래가 아비에게 꿈에서 누가 슬피 울며 문을 열러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때 문 밖에서 목 쉰 여자가 문을 열어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달래는 엄마 같다며 문을 열러 주자하고 아비는 열어주지 않는다. 여자는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다 사라진다.

포교가 와서 사또가 달래를 후첩으로 데려가길 원한다며 달래 아비를 재촉하고 간다. 바우는 아비에게 후첩으로 간다는 달래의 소문을 듣고 아비는 바우에게 달래와 함께 달아나라고 한다. 부녀는 밤에 짐을 꾸리고 어릴적 산불로부터 구해주었던 엄마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일어나 엄마를 두고는 못 간다고 하자 아비는 잊어버리라며 달랜다.

아비와 마지막 밤 / 사진 = 고경하 기자

이 때 달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달래는 아비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뛰쳐나간다.

혼자 남아 고초를 당할 아비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는 달래는 결국, 사랑하는 달래와 바우는 그들만의 행복이 아닌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을 찾아 말더듬이 아비와 문둥병자인 어미를 모시고 같이 문둥이가 되어 그들만의 새 세상을 찾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백성들을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도 없고 설혹 그런 게 있더라도 그것을 명확하고도 또렷한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해 낼 능력을 갖지 못한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무지랭이 흙벌레로 표현해 내고 있다. 그들은 개성 있는 얼굴이나 서로 구별하기 쉽도록 하는 어떤 개별적 특징(personal identity)을 지니고 있지도 못한 까닭에 그 형체가 두리 뭉실하여 서로 구분하기가 힘든 점에서는 달걀귀신이나 문둥이와 다를 바가 없을 듯도 하다.

짐을 싸놓고 잠든 달래 / 사진= 고경하 기자

그들은 또한 바람처럼 윙윙거리는 소리는 낼 수 있으나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148P에서의 무대지시문은 이러한 바람소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바람소리 / 먼데서 / 겨울밤의 / 한참 듣고 있노라면 / 이쪽 넋이 옮아가는지 / 마음에 바람이 옮아앉는지 / 가릴 수 없이 돼가면서 / 흐느끼듯 / 울부짖듯 / 어느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 피 흘리며 한숨 쉬듯 / 울부짖는 / 그 / 겨울밤의 / 바람소리

불이 나는 꿈 / 사진 = 고경하 기자

극이 진행되어 갈수록 무대지시문에서 묘사되는 바람의 이미지는 위의 지문에서 묘사되는 무지랭이 흙벌레의 가냘픈 신음 소리나 무기력한 백성들이 ‘피 흘리며 한숨 쉬듯 울부짖는’ 소리에서 보다 구체이고 또렷한 그리고 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점차적으로 바뀌어간다.

달래와 아비는 그들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는 크나큰 한을 억눌러 감추려 드는 내용이다.

극단 연인무대(대표 김종련)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막연히 슬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을 세부적으로 이해하고 작가의 프로필을 생각했을 때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을 가족애로 그려냈다는 의식에 집중하면서 역할에 충실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극의 느낌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위해 구음과 첼로를 넣었다“고 말했다.

아비와 달래 남자친구 /사진 = 고경하 기자

관람객 문해청 기자는 계명대돌계단 앞 연극문화거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연극공간이 타 지역에 비해 아주 협소하고 대구광역시나 관할 남구청에서 적극적 지원이나 홍보가 필요하다고 척박한 대구문화 연극환경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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