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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형락 선생의 뜻을 기린 형명재단(亨命財團) 창립..
사회

대구, 이형락 선생의 뜻을 기린 형명재단(亨命財團) 창립

고경하 기자 입력 2018/12/01 15:01 수정 2018.12.01 17:14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존귀한 존재하다 인간해방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한다 며 자식에게 온몸과 삶으로 가르치다
형명재단 창립 보고회 / 사진 = 고경하 기자

[뉴스프리존,대구=고경하 기자] 범민련남측본부 대경연합(의장 한기명)은 지난 29일 대구공익활동지원센터 '바람'에서 ‘형명재단 창립 보고회’를 개최했다.

형명재단은 이형락 선생(활동 시 가명 이권)의 뜻을 기리기 위한 재단이다. 박정희 정권시절 조작된 ‘남조선해방전략당’은 2015년 대법원 판결로 무죄 판결을 받고, 유족이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만든 장학재단이다.

이 선생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0대 나이에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떴으며, 해방 이후 서울에서 자주민주학생운동을 하다 1950년 서울시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탈옥하고 남로당 종로구 당원과 체신부 인쇄공장 지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 선생은 1959년 서울에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에 참여했고 1960년 4.19혁명 당시 대구로 내려가서 경북노동조합협의회 통계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형락선생 부인 대경연합 의장 한기명 / 사진 = 고경하 기자

특히 이 선생은 이 땅의 가난과 모순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각성하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변혁운동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동자중심의 전위정당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4년 1차 인민혁명당(약칭 인혁당) 사건 시기에는 다행히 검거를 피했지만 1968년 7월 30일 통일혁명당(약칭 통혁당) 관련자를 검거할 때 붙잡혀 압살적 갖은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조작된 ‘남조선해방전략당’의 지역 조직책으로 사형 구형을 받았다. 2심 때 10년형 선고받고 10년간을 대전교도소 영어의 생활했다.

이후 이 선생은 1978년 9월 6일 만기, 출소했지만 공안세력에 의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받아왔다. 결국 이 선생은 모진 고문과 타살적 매질의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제대로 교육도 못시켰고 불구가 된 자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결국 1985년 6월24일 쉰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 

현재 경북 경산 천주교묘원인 장미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 선생은 자제와 가족에게 늘 ‘사람도리’에 대해 말했다 항상 자상하고 인간애가 깊어, 동냥 온 거지나 넝마주이에게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형락 선생은 한기명(현, 범민련남측본부 대구경북연합 의장)과 1957년 결혼하여 슬하에 다섯 딸을 두고 있다.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진보경제학자였던 권재혁 등 12명에게 "국가 전복·공산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 남조선해방전략당을 구성하고 내란을 예비 음모했다."고 하는 간첩사건으로 조작된 공안사건이다.

형명재단은 “평등 세상을 위해 희생된 분의 자손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를 위한 장학, 후원사업, 통일과 민주화, 평등세상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사업”등을 진행 한다.

장학금 전달식 / 사진 = 고경하 기자

다음은 형명재단 창립선언문이다. 이제 50년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를 빼앗기고도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어린 자식이 이미 중년의, 노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내었던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은 2014년에야 무죄선고를 받았다.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이 하나 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부패한 권력에 의한 죽음이 없는 세상,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가 없는 평등한 세상, 그러한 사회를 만들고자 온갖 사악한 탄압과 옥고에도 젊은 시절을 버티며 열심히 살아오셨던, 참으로 따뜻했던 우리의 아버지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 세상을 따뜻하고 평화롭게 만들고자 했던 그 길에서, 가장 먼저 노동자의 각성과 조직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전국적노동자조직 건설을 위해 노력하다 박정희의 장기집권 유신독재 야욕에 간첩,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이름으로 각색되어 몸과 정신을 모두 파괴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년을 무덤에서조차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우리에게 사람 사는 법을 알려주신 아버지,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주신 아버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 애틋한 마음을 모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아비의 삶, 아버지의 뜻을 다시금 펼치려 첫발을 내딛는다.

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땅의 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평등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아버지 어머니의 함자에서 한 자씩 따서 단체를 만들었다.

형명재단(亨命財團)은 이 땅의 통일과 민주화, 평등세상을 위해 희생된 분과 그 자손을 위한 장학사업과 활동하는 활동가를 지원하고 함께 하고자 한다.

작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염원이지만, 아버지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통일 민주 노동 평화 활동가의 뜻과 그 삶을 추모하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다. 

창립 선언문을 마무리하며 형명재단이 잘 운영되고 모두 더불어 행복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겠다. 고 강단진 결의를 모았다

이날 초대한 내빈을 위해 한기명 의장님의 큰 딸은 유가족을 대표하여 ''평생을 올곧고 선하게 살다 55년 짧은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를 기리는 딸의 효도라 믿으며 형명재단 잘 가꾸어 나가겠다.'' ''건강사회를 위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담담하고 깊은 속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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