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대구=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송필경] 나는 기독교 계통 대학을 다녔지만 우리나라 대형교회나 대성당의 행실에 대한 반감 때문에 기독교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특별한 예지만 십일조를 안내면 암 걸린다거나, 성당 다니는 아내가 성당 증축이면 성금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에 눈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초 페이스북을 통해 김영 전 인하대 교수를 만났고, 지난 10월 베트남 평화기행을 하면서 일행의 한 분인 홍영진 전 인하대의대 교수를 만났다. 그 후 안 사실인데 두 분 모두 향린교회 출신으로 절친이라 했다.
속으로 아, 그렇구나. 향린 교회라면 홍근수 목사를 상징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진보 교회로써 유신과 군부독재 타도에 선봉에 섰기에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기독교를 멀리했지만, 문익환, 홍근수 목사 이런 분은 존경하지 않을래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교수와 홍 교수 두 분의 언행에서 홍근수 목사의 향린교회 출신다운 시대의 아픔에 공감을 하는 격조를 느꼈다. 얼마 전 대구에서 십자가도 설교 연단도 없는 이를테면 시민단체 사무실 같은 위드교회를 만났다.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12월 5일 대학로에서 해방신학자 김근수 선생의 강연을 2시간 들었다. 내가 기독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고정관념을 깬 귀중한 강의였다. 예수는 물질적 부자나 지식 부자인 지식인을 나무랬지 가난한 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느님도 가난한 자를 선택하셨고 예수도 가난하게 살았다.”
예수가 가난한 자의 잘못을 못 봤거나 모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나 지식적인 부자들에게 핍박 받는 가난에 대한 연민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해설이었다. 두 분 선배님의 인격과 가난한 교회 그리고 가난한 예수를 보며,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교회는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렇다면 기독교를 공부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얼마 전 청와대 핵심 권력이 “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나도 민노총과 전교조의 잘못을 못 봤거나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의 양심적인 진보학자 하워드 진의 말을 강하게 기억한다. “약자의 외침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이 금언(金言)을 떠올리면 우리나라 핵심 권력층의 진보 인식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 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민노총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서 내팽개치고 범죄 적폐인 삼성을 그렇게 온 정성 다해 끼고 도는가?
콘베이어 벨트에 끼어 몸뚱이가 두 동강 난 비정규직 노동자 24살 ‘김용균’! 이 정권에서 이런 일을 예방하려는 의지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참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구 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에 이어 우리사회는 왜 이런 일을 쉽게 잊고 방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