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와 그의 아들 안준생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나는 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의 한 수'인 공연이다. 하나는 아베 총리의 진두지휘 아래 일본이 우경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시기에 '맞불' 같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망상과 비교해 한국과 중국, 일본이 연대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한다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만국 공법 사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안중근·안준생 1인 2역 송일국의 캐스팅이다. 지금이야 송일국이 KBS 2TV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 대한·민국·만세를 통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2010년 초연 당시는 삼둥이가 세상이 나오지 않았던 때 아닌가. 일찌감치 송일국을 찜한 윤석화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라 평가할 수 있다.
- 지금 일본은 아베 총리가 우경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너다>는 시의성이 적절해 보인다.
"<나는 너다>에는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 한 명 한 명의 주인의식이 바로 설 때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아베 총리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놓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의 초석을 마련하는 중요한 일을 했다. 그 외에도 존경해야 마땅할 중요한 정신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른다. 이런 점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진보할 수 없다.
외교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다움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본다. 저는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야말로 애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전문성을 깊이 있게 뿌리내릴 때에야 나와 이웃, 나라를 지킬 수 있다."
- 올해로 40년을 맞는 연극 인생에서 <나는 너다>는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관객은 제가 연출하고 만드는 것보다는 무대에 오르는 것에 더 열광할지 모른다. <나는 너다>는 제가 사랑받고, 태어났고, 땀과 눈물을 흘린 연극 세월 가운데서 큰 빚을 갚은 작품이다. 이 나라를 위해, 관객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느낌을 주는 연극이다."
"분노하는 아들에게 '나는 너다' 답한 아버지 안중근"
- 극에서 안준생은 얼굴 한 번 못 본 아버지를 많이 원망한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극적으로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항소 한 번 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나라의 미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 사랑받는다는 풍족감에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은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는 게 아니냐'는 원망을 한다.
안중근 의사는 안준생의 절망 어린 몸부림에 대해 '너를 위해서'라고 답한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안준생은 아버지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고 분노한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연극 제목처럼 '나는 너다'라는 대답을 한다.
저와 조연출도 안중근 의사와 안준생 같은 경우다. 제가 조연출을 많이 가르친다. 이 가르침을 조연출가가 사랑과 관심으로 받아들이면 본인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학대한다고 생각하면 조연출가는 제게 배우지 못하고 사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진정성 있는 사랑과 관심이다. 조연출가를 사랑해서 질책을 하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으면 아예 질책조차 하지 않는다.
다시 안중근 의사와 안준생 이야기로 돌아오자. 운명 때문에 아파하는 안준생이 아버지의 '나는 너다'라는 대화를 받아들여 아버지와 화해가 가능한 거다. 요즘은 많은 볼거리와 재미 가운데에서 대화가 단절된 시대다. 대화를 하면 내 안에 저 사람의 모습이 있고, 저 사람 안에도 내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흑백논리가 아닌 건전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건전한 논의는 이 사회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무엇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를 쏘고, 항소 한 번 하지 않고 죽었는가. 바로 우리를 위해서다. 우리 역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안중근 의사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의 사랑에 아들이 굴복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 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놓아주었더니 일본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독립군을 섬멸한다. 분노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생포하지 말고 사살할 것을 결심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으로 이를 반대하는 극 중 연출이 눈에 띄었다.
"작품을 잘 보았다. 늘 정답만 갖고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것이 연출가의 몫이다. 제가 연기를 해도 '이런 인물이니까 이런 해답을 드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연기를 하면 잘못된 것이다. 작품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관객이 어떻게 해답을 찾을 것인가는 모두 다르다.
<나는 너다>에서 인터뷰어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만국 공법까지 읽었다. 하지만 모든 관객이 동양평화론을 읽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저런 생각을 갖고 있던 분이네' 하는 생각의 방향은 읽는다.
안중근 의사는 지금 태어났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분이다. 동양평화론을 실천한다는 건 대단히 어렵다. 이토 히로부미를 쏜 것 외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부드러울 수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사상이다. 극을 통해 관객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천재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 화폐 개혁도 언급했다. 유럽연합이 화폐를 통합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에 한-중-일 삼국이 공존하는 화폐통합 개념을 착안했다. 아마 아시아 삼국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기초하여 힘을 합쳤다면 지금은 유럽연합 이상으로 멋있게 서 있을 수 있었을 거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30년 후, 늦어도 50년 후에는 아시아의 시대가 다가온다. 아시아가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도 <나는 너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지금에야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 송일국씨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2010년 초연 당시에 과감하게 무대 초짜인 송일국씨를 캐스팅했다. 윤석화씨의 '신의 한 수'다.
"송일국이라는 배우가 무대 발성이 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용정중학교에서 김좌진 장군에 대한 기록을 읽는 순간, 송일국이라는 배우는 이 작품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다.
제가 연출하면서 장점 중 하나가 배우의 연기를 끌어오는 점이다. 제가 배우라 배우의 심리가 어떤지, 배우에게 어떤 메소드를 주면 장점을 끌어올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무조건 송일국에게 프러포즈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캐스팅 제의를 했다. 당시 송일국씨가 많이 망설였다.
어머니 김을동씨는 '네 망신, 연극 망신 줄 일 있느냐, 연극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하다가 제가 연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윤석화 선생이라면 너를 만들 거다'고 했다더라. 송일국씨가 안중근 의사 연기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서 지금처럼 좋은 결과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