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야 할 보금자리가 학대 장소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작년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는 3만4185건으로 2만9671건인 2016년에 비해 15.2% 증가했다. 아동학대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 학대, 방임 총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연말까지 신설하겠다던 아동학대대응과는 소식이 없고, 이를 관리해야 할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최근 5년간 각 유형의 아동학대는 급증하는 추세로 여러 학대를 동시에 하는 ‘중복학대’도 2016년 8980건에서 2017년 1만778건으로 20% 늘었다. 부모의 학대 의혹으로 아이들이 숨지는 사건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더디기만하다. 최근 경기 의정부시에서 4살 딸 A양을 폭행하고 화장실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부의 학대로 숨진 고준희 양부터, 제주 5세 아동 사망사건, 그리고 지난 1일 의정부 5세 아동 사망사건까지. 지난 1일 자신의 딸이 바지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자신을 깨우자 화장실에 감금해 사망하게 이른 친모가 9일 구속됐다. 친모는 조사에서 “벌 세운 것은 맞지만 때리거나 학대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부검 결과 딸의 두부에서 심한 혈종(피멍)이 발견됐다.
아동학대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난다. 잘못된 훈육이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작년에 발표된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에 의하면 학대 행위자의 특성으로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이 35.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17년 아동학대 사건 총 2만2157건 중 학대 행위자가 피해 아동의 부모인 경우가 1만7034건으로 76.9%에 달했다.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가정 내 아동학대의 원인은 개인적인 요인부터 빈곤, 이혼과 같은 사회·환경적 요인까지 다양하다”며 “아동의 발달 과정에의 무지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부모의 스트레스, 분노조절 능력 부족도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아이를 대상으로 이뤄졌던 아동학대 폭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집계된 학대받은 아동은 1만4000명이 넘었고, 그 중 20명이 숨졌다. 특히 의정부 사건의 경우 정부 산하인 경기도 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관리를 받는 아동이었지만 결국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해당 복지사는 혼자서 이 아동 외에 116명의 아동을 돌보고 있었다.
지난 4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9명, 2018년에는 10명의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 숨졌다. 아이를 낳자마자 방치해 죽이거나 부모의 동반자살 등을 포함하면 건수는 더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행위자를 대상으로 한 사후교육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키우기 전의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아동보호기관 측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모르니 자신이 훈육하는 건지, 학대하는 건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훈육과 학대를 구별할 수 있도록 예비부모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준(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잘못된 훈육은 자신이 어릴 때 받아왔던 양육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며 “아동학대의 근절을 위해선 부모가 되기 전에 양육 태도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지난해 1월~8월 사이 사망한 아동의 수는 20명(방치ㆍ학대ㆍ동반자살 포함)에 이른다. 2017년에는 37명이었다. 재학대 사례 역시 늘어 ▲2013년 980건에서 ▲2017년 2000건으로 2배 넘게 증가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자는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7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망 아동 171명 중 68명이 부모의 학대에 저항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 촉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고 어려운 가정 내 학대, 재발 막아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아동학대대응과를 신설해 본격적인 아동 학대 예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산하아동학대대응과는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을 포괄하는 범부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한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제10조(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인지한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특히 유치원이나 초·중등 교직원, 의료인, 사회복지공무원, 보육교사 등 직무상 아동학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직업군은 2016년 신설된 신고의무자제도에 의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됐다. 정부는 아동학대대응과를 통해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대책을 수립하고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 관련 법령 및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빠르면 11월말, 늦어도 연말까지 아동학대대응과가 신설된다고 당시 보건복지부는 밝혔다. 문제는 아동학대 사건이 노출될수록 관련 정책과 대책이 보완 수정되고 있으나 사실상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학대가정의 재발을 막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후관리'의 방법과 기간이 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2개월이 지나도록 해당 부서는 신설되지 않고 있다. 부서간 이견 조율에 시간이 걸렸고, 이와함께 다른 이슈에도 우선순위가 밀렸기 때문이다. 지난 3일에야 범부처 차관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신고의무자도 가정 내 아동학대를 발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조안(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체벌을 금지하도록 법적 장치들이 마련돼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과는 달리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나 그루밍 성폭력은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신고의무자들이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정 내 발생 학대가 80%를 넘고 대부분 아동이 분리 없이 가정에서 보호 중이기 때문에 가정방문과 지원을 통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학대가정의 재발을 막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후관리’의 방법과 기간이 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동학대 방지 교육을 누가 할 것이냐를 놓고 부처간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12월에 차관회의 때는 다른 안건 때문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대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시에는 아동학대처벌법 제4조에 의해 아동학대치사죄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014년 대법원은 아동학대 범죄에 최대 15년의 징역형까지 선고 가능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아동학대범죄 처벌특별법' 위반으로 법원에 접수돼 처리된 총 344건 중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78건에 불과했고, 집행유예는 103건, 재산형은 50건이었다. 박영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법적 형량은 아동성범죄에 최소 25년 의 징역형에서 최대 사형에 처하는 미국 등 의 선진국에 비해 낮다”며 “진지한 반성이나 훈육과 같은 감형 사유를 배제하고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관계자는 “1월안에 해당과가 신설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례를 직접 관리해야 하는 아동전문보호기관은 그 역할과 책임에 비해 규모와 인력,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4곳에 불과하며 상담원은 364명(2014년 기준) 뿐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61곳으로, 상담원 수는 894명에 불과한 데 반해 추계 아동 인구(0세∼17세)는 869만4953명이나 된다.
친모가 화장실에 방치해 숨진 의정부 아동의 경우는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던 터여서 관리의 ‘질’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아동의 경우 지난 2017년 5월 학대 신고가 들어와 친모와 ‘분리조치’ 처분을 받았다. 이후 1년간 친모와 떨어져 있던 아이는 이후 부모 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학대는 계속됐다. 일각에서는 처벌 강화보다 재학대 예방을 더 강조한다. 가정 내 아동학대의 특성상형을 늘리더라도 학대 가해자가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유조안 교수는 “학대 행위자인 부모의 행동을 교정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벌 강화보다는 상담치료나 교육을 강제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아동보호기관, 상담 기관, 의료기관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는 영국처럼, 우리나라 또한 아동학대 재발 시 아동을 분리보호하고 부모를 처벌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5월부터 가정방문 8차례, 아이의 기관 방문 6차례, 전화상담 19차례를 시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상담원 1명이 아동 9725명을 담당하는 꼴이다. 아동 인구가 우리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주(1명당 아동 1860명)와 비교하면 5배 이상 차이 난다. 또 원가정과 완전히 분리가 필요한 아동은 장기보호시설로 옮겨지는데, 지자체가 관리하는 장기보호시설은 학대 아동만 돌보는 게 아니라서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민간에 의존하는 보호기관 한계 있어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리의 ‘질’에 의문을 표시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한바 있는 신수경 변호사는 “기관의 개입에 한계가 있다”며 “전문화된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고 있고, 투입된 사회복지사들의 업무량도 많아 체계적인 아동관리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신고접수부터 사후관리까지 아동학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관이 민간에서 운영돼 현장 관리에 제약이 있다. 경찰이 동행하는 신고 출동이 아닌 일반 사후관리 방문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조안 교수는 “상담사에게 사법적 권한이 없다 보니 사후관리를 위해 가정에 방문했을 때 보호자가 거부하면 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지역사회의 관련 기관과의 협력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열악한 처우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복지사들의 이직률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캐나다 등 14개국은 아동학대를 인지하는 대로 신고하는게 의무화돼 있다. 또 미국의 경우 12세 미만 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은 방임학대로 간주하며 어른들이 어린 자녀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싸워도 아동학대로 처벌 받는다. 영국의 경우 아동에게 폭언을 하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경기북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상담사가 6명으로 1명단 40가정, 116명의 아동을 돌보고 있다. 수치로만 보면 체계적인 관리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간에 교체되는 경우도 많다. 의정부 아동의 경우 숨진 당일 해당 상담사가 교체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도 문제다. 현재 운영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수는 전국 63개소다. 2019년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100곳까지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과는 달리 내년에 확충되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4개소뿐이다. 미국은 공공기관인 아동 보호국이, 영국은 지자체의 사회 아동 돌봄 부서에서 원가정 복귀가 아니라, 아이가 안전한 가정에서 위탁 양육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난도 심각하다. 상담원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아동 수는 6300여 명에 달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미하다. 아동학대 예방사업에 배정된 올해 예산은 254억 원으로 지난해 예산 266억 원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박영준 교수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비해 예산 지원은 소극적”이라며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예산마련과 정책변화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을 확충하고 상담원에게 일부 법적제재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아동 문제를 민간 혹은 지방자치단 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