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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 같은 듯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이야기

이수연 기자 입력 2016/04/10 11:39
연극 <백중사 이야기>


[뉴스프리존=이수연 객원기자]작년 여름 유시어터 페스티벌 중의 한 작품으로 열흘 동안 올려진 연극 <백중사 이야기>가 올해 봄에 한달 동안 올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던 수염을 깎고 머리까지 말끔해진 김도완 배우는 무대에서 그의 삶의 레이어가 느껴지게끔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물 김병장으로, 배우 김도완으로, 인간 김도완으로. 무대 위의 그는 진정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올해는 김도완, 김영준, 여욱환, 세 명의 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각자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병장을 보여 주었다. 군인들의 사랑을 받는 술집 여인 금자 역에 배우 김타연과 위지영이, 백중사와 결혼하는 술집 여인 영자 역에 배우 이화와 엄태나가, 또 부대장 역에 배우 한규남과 송부건이 더블 캐스트로 출연하여 관객들에게 매번 신선한 재미를 안겨 준다.

연극 <백중사 이야기>는 군부대를 배경으로 등장인물이 모두 군인이고 술집 여인이 겨우 두 명 나오지만 단지 군인이라는 특정 직업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 사회에서 다른 배경을 안고 살아 온 인물들이 군대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만나 같은 듯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소소하게 담아낸 이야기이다.

여자들에게는 자칫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군대 안의 이야기를 100분 동안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웃다가 울다가 리액션을 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보며 웃음을 연신 터뜨리는 여성 관객들과는 달리, 남성 관객들은 군 생활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과 배우들의 대사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관극의 중간 중간에 깊은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사진제공/박태양

특히 배우 김진곤과 한인수의 찰떡같은 궁합은 관객에게 편안함과 재미를 선사하며 그들만의 유니크한 호흡으로 ‘정말 저런 사람 꼭 있어.’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디테일과 진솔한 삶을 보여 주었다. 배우 김주영은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말년 병장의 모습을 아주 리얼하고 코믹하게 그려내었고 배우 김대영은 그 큰 눈망울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겁먹은 아이의 표정으로 어리버리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속칭 ‘고문관’ 이등병의 모습을 여실히 표현하였다. 이 네 계급을 가진 군인들의 내무반 장면은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 노래와 춤 그리고 유치찬란한 옛날식 개그에 CM송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유쾌한 웃음과 동정심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아직 군 생활을 겪어보지 않은 10대와 20대에게는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호기심을 안겨 줄 것이고 30대와 40대에게는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날 것이다.

관객들에게 공감을 안겨주는 주옥같은 대사들은 배우들과 연출 이국호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것도 있을 테지만 이 작품의 힘은 작가 고연옥의 원작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백중사 이야기>는 고연옥 작가가 스물다섯 살에 쓴 처녀작이다. 군대를 가본 적도 없는 20대 중반의 여인이 수많은 리서치와 끝없는 고민을 통해 퇴고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토록 탄탄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그려보겠다는 치기어린 마음과 이해할 수 없는 한 인간을 통해 인간됨의 조건을 찾아보겠다는 야심이 들끓던 시절이었습니다. 백중사는 그렇게 지난 20년 간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글쓰기로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엔 두 아이를 둔 엄마임에도 아직도 여린 소녀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 작품을 더 현실감 넘치고 섬세하게 이끌어낸 것은 연출 이국호의 힘이 크다. 대학로에서 배우 겸 연출로 활동 중인 이국호는 2006년에 문삼화 연출로 초연되던 당시 출연을 했었던 경험이 있어 더욱 애정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작년 공연에 이어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앵콜 공연을 올리게 된 이유가 “그 때 행복했기 때문. 모두가 행복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사진제공/박태양

이번 공연을 통해 그들에게는 큰 아픔이 있었다. 2주차 공연을 하던 중 주인공 백중사 역을 맡은 배우 조운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창단된 히스씨어터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배우 조운은 뇌출혈 판정을 받고 바로 수술 후 현재 의식을 찾고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에 있다고 한다. 몇일 동안 공연을 중단하고 그의 회복을 손모아 기도하며 슬퍼하던 동료들은 사재를 털어가며 이 공연에 최선을 다하던 그의 뜻과 관객과의 약속을 생각하고 공연을 다시 재개하기로 결심했다. 주인공 백중사 역에는 연출 및 배우 이국호와 이병장 역을 맡았던 김도완이 남은 무대를 책임지게 되었다.

아픔을 딛고 다시 선 무대 위의 배우들과 조정실의 스탭들, 관객을 가장 먼저 만나는 기획진행팀들까지, 공연팀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특히 무대 위의 배우들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의 호흡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에 오감을 열고 느끼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모든 순간은 진실했고 빛과 소리와 인간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관객들도 그들과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았다. 시간을 붙들고 사는 백중사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우리는 1시간 40분 동안 그 시간 속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앵콜을 준비하며 “행복했던 그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라는 카피를 덧붙인 때문일까.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끌어안는 그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다. 관객들에게도 행복을 느끼게 하고 내 삶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선물해 주는 이 예술가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힘낼 수 있는 마음의 형이 되어주신 조운 배우의 쾌유를 바라며 마지막 공연도 행복하길 바란다. 가끔 그 때 꿈을 꾸며 행복해지고 싶다면 따사로운 봄날, 연극 <백중사 이야기>를 만나러 가면 어떨까.

고연옥 작/ 이국호 연출/ 조운, 이국호, 김도완, 여욱환, 김영준, 한규남, 송부건, 김주영, 김진곤, 한인수, 김대영, 김타연, 위지영, 이화, 엄태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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