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참 신기해요. 전에는 마냥 싫고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쫓고 쫓기기 바빴는데.”
서울 강동구에 사는 윤희순(53·여)씨는 개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 때문에 동물을 경계했다. 밤마다 귀청이 찢어져라 울어대고 쓰레기 봉투를 헤집다가 도망가는 길고양이는 특히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집 주변에서 길고양이가 눈에 띄면 윤씨는 잠시 멈춰 바라보곤 한다. 이전처럼 경계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며 교감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윤씨는 “확실히 밤에 울음소리도 별로 들지 않고 쓰레기 봉투를 뜯는 일도 보기 힘들어졌다”며 “변화가 보이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은 강동구에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이 전국 최초로 시작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3곳으로 출발하던 당시에는 실효성을 놓고 찬반이 분분했지만 개선과 보완을 거듭하며 급식소는 어느덧 60곳으로 늘었다.
구가 최근 지역의 통장 443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48%가 ‘주택가에 쓰레기 봉투를 헤집는 일이 줄었다’고 답했다. 또 17%는 ‘동물복지와 생명존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42%는 ‘향후에도 길고양이의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논란이 분분한 사안을 제도화한다는 측면에서 부담이 컸던 구는 반색이다. 강동구 관계자는 “고양이과 관련한 소음, 미관에 대한 민원이 줄고 학대나 구제에 대한 민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며 “동물교실이나 동물복지 행사 등을 통해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도 키워갈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 여건은 물론 인식 개선 효과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주요 시민공원에 급식소를 설치한 서울시를 비롯해 부산시, 광주 서구, 경북 포항시, 인천 연수구 등 전국 각지에서 사업이 시작됐고 자체적으로 급식소를 설치한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과 동물보호단체와 협약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의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TNR(포획·중성화수술·재방사)을 통한 개체수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TNR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먹이 공급 확대로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늘리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의 TNR 시행은 2012년 194건에서 지난해 308건으로 늘었다. 이를 통한 길고양이 개체 수 감소 효과는 같은 기간 504마리에서 800마리로 증가했다. 그러나 강동구에 서식하는 길고양이가 약 8000마리(서울 전체는 약 20만마리)임을 감안할 때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서정대 조윤주 교수(애완동물과)는 “아직 국내의 TNR은 민원 발생을 해소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이뤄지는 측면이 크고 포획과 방사에 모두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많은 양이 이뤄지기 힘들다”며 “뜻있는 수의사와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늘려 예산을 낮추고 집중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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