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이천호기자] 최근 한 중견기업으로부터 "새 사무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던 빌딩중개업체 관계인은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실무자와 몇 차례 실사 끝에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광화문대로 인근 빌딩을 고른 후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거래가 끝나는 단계까지 갔지만 평소 풍수에 관심이 많은 의뢰 기업의 회장이 "대로가 너무 넓어 손님이 빠져나가는 자리다"며 반대해 결국 다른 곳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풍수지리에 꽂힌 기업은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으로 한국지사를 옮기려고 물건을 물색하던 글로벌 T기업은 아예 본사에서 풍수사가 들어와 중개업체와 함께 현장 투어에 나섰다. 그 결과 찾아낸 것은 당초 예산과 맞지 않아 후보에서 뺐던 역삼역 인근 C빌딩. "건물 모양이 곧 돈이 모이는 형상"이라고 풍수사가 찍은 곳이다.
스마트폰과 전기차가 등장한 21세기지만 적어도 부동산 시장에서는 아직까지도 풍수지리가 상당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사람의 관상처럼 '땅의 형상'을 읽어 어떻게든 좋은 자리에 둥지를 틀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아서다.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기업들 성공 스토리에는 '풍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주석이 달리고, 과거 안 좋은 터로 꼽혔지만 일종의 액막이 과정을 거쳐 황금 용지로 탈바꿈한 역전 드라마도 나온다.
풍수지리와 연관된 성공 스토리로 최근 조명받는 곳은 바로 서울 종로구 수하동 센터원빌딩에 자리한 미래에셋이다. 치열한 경쟁에도 작년 말 KDB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한 것을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는 "땅의 기운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빌딩이 있는 수하동 자리에는 과거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던 주전소가 있었고 지금의 시장인 '시전'이 발달했다. 그만큼 재물의 기운이 집중돼 기업 입장에서는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 빌딩 중개업계 관계자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평소 풍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귀띔했다. 풍수지리상으로는 '여의도=증권·금융의 메카'라는 공식도 맞지 않는다. 물 위에 뜬 모래섬이고 바람이 세기 때문에 돈이 차곡차곡 쌓여야 하는 금융기업이 자리 잡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올해 말 30년 만에 본사를 명동으로 옮기는 대신증권, 이미 북촌 한옥마을로 이사한 메리츠자산운용 등 여의도를 탈출해 도심으로 이사한 금융사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 강남 최초 백화점으로 이름을 날렸던 논현동 강남구청역 사거리 옛 영동백화점 터는 팔자 센 땅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지하철 7호선과 분당역 환승역인 강남구청역을 낀 초역세권이라 교통 편의성과 유동인구 유입 면에서 알짜 입지로 꼽히는 곳이지만, 1983년 영동백화점이 문을 열었다가 영업 부진 탓에 10년 만에 폐업하고 이듬해 같은 자리에 개장한 나산백화점도 4년 뒤 건물 지하 기둥에서 발견한 심각한 균열로 폐쇄 조치되면서 '강남의 흉물'로 전락하는 등 악재가 계속됐다.
그러다 2008년 바뀐 소유주가 이 자리에 지상 23층짜리 업무용 빌딩을 지으면서 땅의 운명이 바뀌었다. 당시 건물주는 풍수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이 자리에 위지령비와 사자석상을 세웠다. 부족한 음양의 조화를 꾀한다는 의미다. 산봉우리 터라 물이 부족한 단점을 없애기 위해 벽면폭포와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2011년 완공된 포바(POBA) 강남타워는 현재 GE에너지와 휴비스, 퀄컴 등이 입주한 글로벌 기업의 메카로 탈바꿈했다.
서울 역삼동 두꺼비빌딩처럼 조금 더 좋은 풍수를 만들기 위해 정문 앞에 금두꺼비 조각상을 세워놓은 곳도 있다.
풍수에만 의존해 사무실 터를 찾는 것은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터'가 있는 만큼 풍수에 빠진 최고경영자(CEO)들이 사무실을 고를 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네모반듯한 사각형 모양에 도로가 접해 있는 곳이 오피스가 들어서기 가장 좋은 땅으로 꼽힌다"며 "다만 시대와 업황에 따라 과거 나빴던 땅이 좋아지기도 하는 등 풍수에 대한 평가는 항상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터와 건물풍수
모든 존재현상과 길흉화복은 기의 취산(聚散)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생명의 근원으로 볼 수가 있다.
한(漢)나라 때는 음양오행으로 기의 이론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우주 자연의 운행과 천문지리, 양생(養生)의학 및 길흉화복과 관련되는 일상생활에까지 기를 적용하여 풀이하고 비보(裨補살기를 생기로 바꿈)를 실천함으로써 흉함을 제거하던 시대였다.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기에 관한 인식은 “산세가 기가 세다”라고 하거나 “이곳은 터가 너무 세다”라고 하는 의미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형세·조짐·기운, 그리고 양생과 관련하여 신체상의 생명력·힘·정기 및 생체에너지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생기가 있는 터에 건축한 공장·기업체의 사옥·여러 종류의 주된 건물 등도 형상과 또 다른 요인으로 인해 살기를 내뿜으면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되는 일이 없다고 불평을 하거나, 잘 나가다가 갑자기 푹 주저앉는 사례를 허다하게 본다.
건물 내부의 동선이 뒤틀려있거나 그 외의 풍수적인 인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 주변의 기운이 어지럽게 되어 안전사고·불량품 과다발생·사업계획의 오류나 오판·기획력의 상실 등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업도 간혹 볼 수 있다.
풍수적인 인자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극히 자연적인 현상을 간과하거나 기본을 무시한 채 진행하게 되면 발생하는 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한두가지의 풍수적인 요인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풍수적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면 통합적인 시각으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게 된다.
고(故)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뒤편에 있다. 세간의 풍수사들 중에 재벌묘소의 대표적인 명당이라고도 하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터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에버랜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즐기며 가는 곳이어서 자연스레 비보(裨補·흉한 기운을 좋게 함)가 됨으로 인해 좋은 터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SK그룹 내 최고 명당으로 꼽히는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SK그린빌딩은 생기가 가득한 최고의 건물로 알려져 있다.
그룹 내 대표적 회사인 SK텔레콤은 1995~1999년 이곳에서 급성장해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GS그룹은 GS건설(과거 LG건설)의 남대문로 GS역전타워를 풍수적으로 좋은 건물로 들 수 있는데, LG와 GS가 계열 분리를 하면서 막판까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접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GS건설은 이 건물에 입주한 뒤 역시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서울 계동 사옥에서 2000년 말에 본사를 양재동 사옥으로 이전한 뒤 현대·기아차는 매출과 당기순이익 등에서 연이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땅을 개발함으로써 지기(地氣·땅의 기운)가 쇠퇴하기도 하고, 반면 개발로 인해 지기가 되살아나 큰돈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좁은 국토에서 지기가 살아있는 땅을 찾거나, 지기를 살릴 수 있도록 하여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땅을 만드는 것도 풍수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기업총수는 경영능력과 부의 사회 환원에 대한 도덕적인 인성도 중요하지만, 땅과 건물의 용도에 따른 기업적 안목도 반드시 갖추어야만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할 것이다.
개발로 땅의 성격이 바뀐 사례로는 강이 메워지고 건물을 들어서게 한 잠실개발정책이 있다.
1920년도 지도를 보면 잠실은 부리도(浮里島)라는 명칭의 평범한 섬이었다.
남쪽 한강의 본류를 메우고 북쪽의 지류를 넓혀서 강북의 섬이었던 잠실섬을 송파구에 편입시켜 버렸다.
생태환경이 파괴되면서 자연히 땅의 쓰임새도 달라지게 되어버렸다. 즉 땅의 팔자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의식주 해결의 중심지가 오늘날에는 유원지로서의 용도로 변환된 잠실스타디움, 잠실롯데월드로 되었으니 땅 팔자도 시간문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