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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MB 책사' 정두언 前의원, 파란파장의 정치 역정..
사회

'비운의 MB 책사' 정두언 前의원, 파란파장의 정치 역정 마감

김원규 기자 입력 2019/07/17 08:55 수정 2019.07.17 08:57

[뉴스프리존= 김원규 기자] 16일 충격적인 사망에 이른 정두언 전 의원의 시신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안치됐다. 빈소는 17일 이곳에 차려진다.

정 전 의원은 최근까지도 티비와 라디오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정치평론을 이어왔기에 그의 사망소식은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합리적 보수 정치인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정치시사 평론가로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던 그의 사망 소식에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정 전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마지막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정 전 의원의 정치 입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계기로 이뤄진 거나 다름없다. 2000년 한나라당 대변인에 이어 2002∼2003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그는 17·18·19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을에서 내리 당선됐다.

초선의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에 일등 공신으로 꼽힐 만큼 MB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결국 2007년 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정 전 의원은 개국 공신으로서  그의 정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과 조각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국정의 핵심이었지만 MB를 둘러싼 권력의 암투가 그를 야인 아닌 야인으로 돌려세웠다.

인수위에서 밀려나온 정 전 의원은 2008년 6월 이른바 상왕으로 불리며 '만사형통'(모든 것은 형으로 통한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막강했던 MB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의 갈등을 겪게된다.

특히 그가 남긴 '권력의 사유화' 발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정 전 의원은 'MB 저격수'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최근까지 이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다스' 수사가 이뤄지자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다스는 MB 것'이란 의혹에 결정적 증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개국 공신이었지만 정권 말기인 2012년에는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되며 이듬해에는 법정 구속까지 당해야 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부활해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내리 3선을 이뤘던 서대문을에 다시 출마했지만 4선 달성에는 실패했다.

그는 낙선 이후에도 종편 채널의 시사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때로는 패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시사정치 평론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심지어 그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월간 정두언'이라는 코너를 만들 정도로 객관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팬 층도 두터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정 전 의원을 만난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전 의원이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최근까지도 약을 먹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임에도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태근 전 새누리당 의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병원을 찾았다.

정 전 의원의 보좌관은 정 전 의원에 대해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셨다"며 "최근에 현 정부 경제정책에 관해 고민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정치인이면서 음반까지도 내며 풍류도 즐길 줄 알았던 그가 결국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였다고 한다. 정 전 의원은 그렇게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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