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이천호기자] 요즘 검찰은 법원에 불만의 소리가 높다. 롯데그룹 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계열사 현직 사장의 구속영장은 두 차례 모두 기각됐기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어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뒤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최근 검찰이 주요 사건 수사 도중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되며 검찰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검찰이 김수남 검찰총장 취임 후 처음 손댄 재벌기업 사건인 롯데그룹 수사에서 영장 기각이 빈번해 “수사가 차질을 빚을 정도”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법원은 “구속 요건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엄격히 심사할 뿐”이란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19일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이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건은 한정석 영장전담 판사는 허 사장을 상대로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롯데그룹 수사는 영장 기각이 유난히 잦은 편이다.
지난달에는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롯데케미칼에서 “세무당국을 상대로 로비해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 세무사 김모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이달 초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진행하려면 주요 피의자의 경우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야 하는데 (영장이 기각돼)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영장 기각은 롯데그룹 수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존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를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도 지난 6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기각됐다. 4·13 총선과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국민의당 박준영, 박선숙, 김수민 의원을 상대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2번씩 총 6차례 퇴짜를 맞는 ‘진기록’을 세웠다. 결국 검찰은 의원 3명을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분을 달랬다.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도 검찰이 핵심 피의자로 보고 있는 박동훈 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은 영장 발부 가능성을 체념하고 박 전 사장을 그냥 불구속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검찰 일각에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둘러싼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현직 부장판사가 수사선상에 오른 데 따른 법원의 ‘보복’이란 해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장 기각이 늘어난 것이 마침 법원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을 더 자극할까봐 말을 아끼는 표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과 부장판사 수사를 연결짓는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법원도 영장 기각을 부장판사 수사와 결부짓는 시선에 극도의 불쾌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형사법 체계의 원칙은 불구속 수사와 재판인데 검찰이 너무 구속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남발은 불구속 재판 원칙을 정착시키려는 사법부 입장과는 다르고 인권보호 차원에서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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