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평한가?…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 북콤마 | 652쪽 | 2만2000원
[연합통신= 허엽기자] 드라마 <미생>에는 동네 자영업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오상식 차장을 찾아온 옛 회사 동료는 퇴직금으로 피자집을 차렸다가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전쟁터 같지. 그래도 잘리기 전엔 절대 제 발로 나오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동네 자영업자의 현실을 ‘지옥’이라고 규정한 이 대사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실제 홈플러스 청주점 일대의 경우 3년 동안 반경 5㎞ 안에 있는 슈퍼마켓 337곳 중 21%가 폐업했다.
2014년 12월12일 서울고등법원 제8행정부는 동대문구청장·성동구청장이 대형마트들에 내린 심야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2012년 국회가 8년 동안 논의한 끝에 마련한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정해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범위에서 제한하고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 2 조항을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의 해석 논리는 유통산업발전법 2조에서 대형마트란 ‘점원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점포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매장 한쪽에 점원이 도움을 주는 정육점이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 대부분의 매장은 안경점이나 화장품점 같은 임대업체가 있고 그곳에서도 점원이 늘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조수진 변호사는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대형마트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대형마트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되지 않는가”라며 “대상 판결의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문리 해석 범위를 벗어났으며 국민의 법 감정상 도저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법부 판결이 “공평한가?”라고 묻고 있다.
20여년간 사법 영역에 대한 감시활동을 펼쳐온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의 주요 사법판결에 대해 비평한 결과물을 내놨다. 판결비평 프로젝트 ‘광장에 나온 판결’의 결과물 중 주요 내용 66개를 추린 것이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암 발병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결, 직속상관에게 여러 차례 성적 가혹행위를 당해 자살한 여군 대위 사건에서 피고에게 군형법상 직권남용과 가혹행위죄를 적용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 등을 다뤘다.
책은 판결 당시 사회적 성격과 파장, 핵심을 풀이한 ‘판결 인트로’, 재판 과정과 문제가 된 법리, 판결의 문제점을 다룬 ‘판결비평’, 재판부와 재판명, 사건번호를 알 수 있는 ‘판결 설명’으로 구성됐다. 하나의 기록물로도 의미가 깊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판결은 시민들의 생각과 주장이 모이고 다시 퍼져나가는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시민이 수긍할 수 없는 판결은 판결이 아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민주공화국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이 주권의 일부인 것처럼 사법권도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시민을 대신해 판결을 할 책임을 부여받을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