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씨의 사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사회의 사회·심리적 불안의 원인분석과 대응방안’, 고용노동부의 ‘2014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등의 통계로 가정한 대한민국 20대, 40대, 60대의 평균적인 삶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고용불안이 전 연령대로 번지면서 누구도 ‘젊은 세대의 희망’과 ‘노후 세대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뒷걸음치는 삶의 질… 아등바등 살아야 현상 유지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는 양적 성장이 국민의 행복을 그만큼 끌어올리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삶의 질 지수는 소득, 고용, 주거 등 56개 객관지표와 24개 주관지표의 값을 단순 평균한 값이다. 그 결과 2006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5년 111.8로 11.8%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은 28.6%로 훨씬 높았다. 삶의 질은 GDP 증가율보다 41.3% 오르는 데 그친 것이다. 특히 여러 지표 중 가족·공동체 영역 지수는 1.4% 감소했고, 고용·임금(3.2%), 주거(5.2%), 건강(7.2%)은 증가율이 10%를 밑돌았다. 그런데 낮은 증가율을 보인 고용·임금, 건강은 우리 국민의 대표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보사연의 한국사회의 사회·심리적 불안 원인과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남녀 7000명에게 물은 결과 20대는 ‘취업 및 소득’(49.9%), 40대는 ‘노후준비’(30.9%), 60대는 ‘신체적 건강’(36.3%)을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았다.
‘88만원 세대’라 불렸던 20대의 경우 동명의 책이 나온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지만 ‘n포 세대’, ‘77만원 세대’ 등 더욱 암울한 수식어를 달고 있다. 가상의 A씨 사례처럼 우리나라 4년제 대졸자 고용률은 졸업 후 18개월 뒤에도 72.8% 수준이다. 취업자의 64.8%만이 정규직(수도권 기준. 여성 정규직은 59.1%)이다.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53.5%에 머물러 역대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졌다.
40대의 삶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40대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사상 처음으로 0%대를 기록했다. 자영업으로 내몰려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양육비 등 쓸 돈은 늘어난 결과다. 통계청 사회동향에서도 30∼40대 10명 중 7명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봤고, 자녀세대의 계층 상향이동 가능성도 절반이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한 민간연구소 조사에서는 40대가 노후불안감이 가장 높은 연령대로 나타났다.
노년기에 접어드는 60대는 소득절벽을 맞딱뜨린다. 60대 가구주의 연평균 소득은 3033만원으로, 50대(6101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존감, 사회적 지지(타인으로부터의 관심), 주변인과의 소통 같은 감정적인 요소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실업률 높은 북유럽… 행복지수 높은 이유
어두운 현실의 탈출구는 없을까. 이에 대한 해법은 국제 행복도 비교 조사에서 얻을 수 있다.
2017 유엔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 우리나라는 155개 국가 중 55위에 올랐다. 2013년 41위에서, 2015년 47위로 떨어진 데 이어 5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최상위권에는 북유럽 국가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상위 5개국과 우리나라의 지표를 보면 경제성장률과 출생 시 예상 건강수명은 우리나라가 앞선다. 우리나라 전 연령대가 일자리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전체적인 실업률과 청년실업률도 우리나라가 1∼2% 포인트 낮다. 행복 순위 5위인 핀란드의 청년실업률은 19.9%로 우리나라(10.7%)의 두배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사회적 안정망과 국가에 대한 신뢰 덕분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기댈 만한 누군가가 있는가’란 물음에 상위 5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핀란드)은 0.95, 우리나라는 0.81의 응답 점수를 보였다.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의지할 만한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더 큰 차이가 난다. 1은 완전한 신뢰, 0은 완전한 불신을 뜻하는데 상위 5개국은 0.56, 우리나라는 그 절반도 안 되는 0.24를 기록했다. 소득·계층 간 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나 ‘인생사다리 점수’(주관적으로 느끼는 현재 삶의 수준)도 북유럽 국가가 훨씬 낫다.
북유럽 국가에서 경기 침체나 실업으로 인한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더 탄탄하다는 얘기다. 보사연의 이상영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경제·산업기술 수준 같은 객관적 지표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음에도 사회모습이 국민 기대치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며 “복지나 상대적 빈곤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