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이천호기자] 19일 오전 9시, “전국 각급 법원 대표들이 모인 법관대표회의에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추가조사를 결의했다.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린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 3층 원형강의실. 판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 판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몇몇 판사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전국 각급 법원에서 뽑힌 대표 법관 100명이 모인 이날 법관대표회의는 남다른 무게감을 갖는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논란 이후 8년 만에 열린 회의이기도 하지만, 사법 개혁의 원동력을 확보할 첫 단추를 끼울 자리라는 의미도 크다.
이날 회의에선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도 논의했다. 이들은 다음달 24일에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남은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전 10시, 김도균(47·사법연수원 27기)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의 사회로 법관대표회의가 시작됐다. 조사 주체는 회의에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직접 하겠다고 밝히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부터 갓 임용된 판사까지, 전국 각급 법원에서 대표로 선출된 판사 백 명이 8년 만에 법관회의를 열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굳게 닫힌 강의실 문 안에서 간간이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장에는 8년 전 법관대표회의를 촉발한 ‘촛불 파동’ 때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 판사 회의 의장을 맡았던 이성복(57·16)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선출됐다.
회의에는 임용 29년차로 서울동부지법원장을 지낸 민중기(58·1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부터 올해 2월 법원에 들어온 차기현(40·변호사시험 2회) 서울중앙지법 판사 사이에 해당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6명, 고등법원 판사 7명, 지방법원 부장판사 29명, 고등법원 배석판사 1명, 지방법원 판사 57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로를 직함 없이 ‘판사’로 호칭하며 사법 개혁 방안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을 벌였다.
열띤 논의를 벌인 대표 법관들은 우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직접 벌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공보 담당 간사인 송승용(43·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의 기획·의사결정·실행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규명하기 위해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등 여러 의혹의 완전 해소를 위해 추가 조사를 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란 양승태 대법원장 산하 기획조정실이 사법부에 비판적인 입장이나 견해를 보여온 판사들의 명단과 정보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한돈(52·28기) 부장판사 등 위원 5명으로 이뤄진 ‘현안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조사 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행정처 기획조정실 소속법관이 사용한 컴퓨터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전’해 달라고도 요구했다.
이들은 먼저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중심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추가 조사하기로 결의했다. 송 부장판사는 “최초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를 뒤집는 재조사가 아니라 조사 결과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추가 조사를 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사법연수원 정문 앞에서는 양 대법원장의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열렸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5일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양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에 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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