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현직 법관이 법원행정처가 비판적 성향을 지닌 일부 판사의 활동을 파악해 관리했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코트넷)에 올렸다.사법부 내부에서 블랙리스트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온 건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이다.
법원에 따르면 5일 남인수(43·사법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전날 코트넷에 올린 3000여자 분량의 글을 통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행정실) 해당 컴퓨터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방안을 오는 24일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안건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남 판사는 “해당 컴퓨터는 행정실 소속 심의관의 행정용 컴퓨터로 판사실 소속 판사의 재판용 컴퓨터와 그 성격이 다르다”며 “결정문이나 판결문 초안 등이 보관되지 않으므로 당사자 권리보호와 공정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관 독립 영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관 독립을 위해 해당 컴퓨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행정처 측의 조사 거부 논리를 정면 반박하는 논리다.
판사회의 공보 담당인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일단 남 판사의 개인적 의견"이라면서도 "대표판사 5명이 공동으로 발의하면 판사회의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다"고 말했다. 판사회의 측은 이 안건을 올려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블랙리스트는 사실무근”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열린 1차 법관회의에서는 “행정처 컴퓨터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안건이 84대 14로 찬성 의결됐지만 양승태(사진) 대법원장은 28일 입장을 발표하며 사실상 컴퓨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남 판사는 “혼외자 의혹을 받는 공적(公的) 인물이 유전자 검사 요구를 사생활을 이유로 거부하면 사람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는 논리가 여기에 적용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양 대법원장이 “판사의 컴퓨터를 열어보자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라며 조사 요구를 불수용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법관회의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남 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 규명을 위해 핵심 증거인 해당 컴퓨터 조사 요구를 80%가 넘는 비율로 의결했는데도 결국 전면 거부됐다”며 “이는 향후 상설화될 법관회의의 위상을 예고한다”고 했다.다만,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비판적 견해도 나온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독립을 최대한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사법부 현안에 대한 국정조사는 선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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