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국내 1호 말 마사지사’로 잘 알려진 박경근씨가 자살을 암시한 후 한국마사회 경마장에서 목을 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부산경마장 마필관리사가 자살한 지 한 달 만에 과천 서울경마장 마필관리사가 또 목숨을 끊었다. 지난 6월 24일 토요일 낮 12시 30분께 국모(46) 씨가 자신의 차에 아내 김모(46) 씨와 10대 아들, 딸을 태우고 강변북로를 달리다 한남대교를 200m 앞둔 곳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차에서 내려 10m 아래 한강공원 자전거 도로로 투신해 숨졌다. 한국마사회의 비정규직 비율이 80%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마사회의 간접고용과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부산 강서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5월27일 오전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경마장인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내 마방(마굿간)에서 말관리사 박경근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의 소지품에서는 마사회의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비판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으며, 박씨는 평소 노동조합 활동을 해오며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목격자들이 투신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차 안에는 함께 탔던 가족들은 경상을 입었다. 경찰에 따르면 유족들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사고경위를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
비판 제기에 대해 마사회 측은 “말관리사는 개별사업자인 조교사가 직접 고용하는 개별고용제이고, 말관리사 고용방식은 정규·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닌 경마 고유 특성이 반영된 전 세계적인 공통된 고용체계”라며 고용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숨진 국 씨가 소속된 전국마필관리사노조는 “워낙 산재 발생률이 높은 곳인데다 최근 같은 마방의 동료까지 다쳐 심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신동원 전국마필관리사노조위원장은 “숨진 A씨는 늘 차분하고 성실했던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이번에 다친 곳에 쉽게 낫지 않아 애를 먹었다”며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우울증을 앓았지만 치료를 다 마쳤고, 현재 유족과 협의해 산재보상 신청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숨진 국 씨와 같은 마필관리사는 마사회와 마주, 조교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의 맨 아래에 있다. 경마에서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두 직군은 개인사업자인 조교사가 채용한 근로자다. 마사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말관리사 고용에 대한 마사회의 책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은수미 전 의원은 5월31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박씨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마사회 측의 주장에 “마사회 규정을 보니 조교사가 말관리사를 채용할 때 마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결국은 마사회가 최종적으로 다 관리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앞서 5월 27일 새벽 부산경마장에선 14년차 마필관리사 박경근(39) 씨가 마방에서 마사회를 향해 욕설에 가까운 유서를 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4년 개장 이후 부산경마장에서만 2명의 기수와 2명의 마필관리사가 자살했다. 숨진 박씨가 소속된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는 마사회를 상대로 마필관리사 직고용 등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대화를 진행했지만 팽팽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그러면서 “말관리사 채용 시 마사회가 부정경마 확인 유무 및 경마 관련 법령 위반 사실 등을 조교사에게 확인해주고는 있으나, 채용에 대한 마사회의 승인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마사회가 조교사와 말관리사 간 고용계약 관계에 개입할 경우, 근로자파견법 등 고용 관련 법령 위반, 공정거래법상 우월적 지위 남용에 의한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마사회는 “마필관리사 고용방식은 정규ㆍ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닌 경마고유의 특성이 반영된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고용체계”라며 직고용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마사회는 관계자는 “마필관리사는 프로야구 구단의 트레이너에 해당하는데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트레이너를 직고용하는 경우는 없다”며 “노조가 내건 9개항의 요구 나머지 8개는 논의하겠지만 직고용만큼은 어렵다”고 했다.
마사회 측은 “다만 공기업으로서 사업주인 조교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불공정한 노무행위에 대해서 꾸준히 계도하는 등 권한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고용불안, 불안정한 수입, 수직적인 사업장 문화 등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서울경마장은 순위상금과 부가상금, 출전장려금, 부가순위상금에 대해 마주와 기수, 조교사, 마필관리사 사이의 배분율을 소숫점 둘째자리까지 명시하지만, 부산경마장은 마필관리사 배분율이 없다. 부산경마장은 조교사가 자기 몫에서 일부를 떼 관리사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경마장 조교사와 마필관리사 사이에 몇 년째 갈등이 이어져 왔다.
서울경마장은 노조가 조교사협회와 집단교섭하는데, 부산경마장은 노조가 33명의 마필관리사와 개별로 교섭하는 구조라 임금과 근무시간을 놓고 교섭마다 몇 년씩 걸린다. 부산경마장 노조는 2004년 노조 설립 뒤 2010년 4월에서야 단체협약을 단 한 번 체결했다. 이후 근무시간 협의 같은 기본적인 사항도 노동부 진정과 고소고발, 소송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이뤄졌다. 첫 단협 체결 이후 근무시간을 1시간 줄이는데 합의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부산경마장 마필관리사와 조교사들은 2014년 10월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11시간이었던 근무시간을 오후 3시까지로 1시간 줄였다. 그나마 경마가 없는 날의 근무시간이다. 경마가 열리는 날엔 저녁 6시나 7시까지 일해야 한다.
2015년엔 저녁 6시 이후에 출발하는 ‘노을경마’에 대한 근로시간 합의가 안돼 노조가 노동부에 조교사들을 고발한 끝에 겨우 합의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부산경마장에서 조교사와 관리사 사이의 배분율이 명확치 않아 양자간 갈등이 심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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