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25일 오후 2시 30분부터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을 가를 1심 선고를 앞두고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는 쟁점들에서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박근혜(65)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씨에게 총 433억여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운명이 25일 결정된다. 이 재판은 ‘대통령과 삼성의 뇌물 거래’라는 공소사실로 인해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2월 28일 이 부회장이 구속 기소된 지 178일 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뇌물공여와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에서의 위증 5가지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선고 공판을 갖는다.
최대 쟁점은 뇌물공여가 인정될지 여부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제공하거나 제공을 약속한 433억원 상당의 금품이 ‘뇌물’로 인정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이 부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를 비롯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등 모두 5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 공소사실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 측이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지원금으로 약속한 213억원은 단순 뇌물죄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출연한 16억원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등은 제3자 뇌물죄를 각각 적용했다. 뇌물죄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등 정부 도움이 필요한 현안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 직권을 활용해 이를 도왔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삼성 측에서는 뇌물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한 최씨가 영향력을 내세워 겁박하고 강요한 결과라고 맞섰다. 특히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등의 현안을 청탁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최씨 측에 대한 각종 지원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삼성 측 논리다.
재판부가 뇌물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이 부회장의 운명은 물론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 결과에도 직결된다. 제3자 뇌물죄는 이에 더해 삼성 측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점까지 인정돼야 한다. 요즘 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독대에서 오고 간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돼야만 유죄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재판 결과는 향후 있을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재판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각각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다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뇌물수수 혐의도 당연히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부회장 재판을 맡은 김 부장판사는 최근 뇌물 사건에서 각각 다른 결론을 내렸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진경준 전 검사장이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 공짜 주식을 받아 12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긴 사건의 뇌물 혐의에 대해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 선고 공판은 김 부장판사가 “2017고합194 사건을 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작된다. 김 부장판사의 양옆에는 이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필복 판사와 권은석 판사가 나란히 앉는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들은 피고인석에서 재판부를 바라보며 선고를 듣게 된다.
재판장은 우선 이 부회장 등 피고인 각각의 공소사실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사건의 핵심이자 최대 쟁점인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해 먼저 언급한 뒤 이와 관련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국회 위증 혐의 순으로 재판부의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세 차례 독대를 통해 뇌물을 주고받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현안이었는지, 그리고 이 부회장이 이 현안을 부정한 청탁으로 전달했는지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밝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 5개월간 이어진 재판에는 59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섰다. 특검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등을 근거 삼아 “이 부회장에게 삼성 경영권을 승계해야 한다는 현안이 존재했고, 경영권 승계 도움과 승마·재단 지원을 서로 맞교환하자는 합의가 박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2일 정씨는 변호인도 모르게 깜짝 출석해 “엄마한테서 삼성이 말을 바꾸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말 세탁 의혹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 재판의 마지막 증인으로 출석한 최씨는 정씨의 증인 출석에 대한 불만을 특검에 쏟아내며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세 차례 증인으로 소환됐고 특검이 구인장까지 집행했지만 끝내 이 부회장과 대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