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15일 오전 11시 35분 [미국 FDA “한국 코로나키트, 비상용으로도 적절치 않다”]라는 기사 제목으로 우리나라 코로나 진단 키트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마크 그린 미국 공화당 의원은 11일 미국 하원 관리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 FDA가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가 적절하지(adequate) 않으며, 비상용으로라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미국 NBC 뉴스의 15일 보도를 인용해 “실제로 그린 의원은 ‘확실히 기록을 남기기 위해 FDA의 입장은 ‘한국의 진단키트’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미 하원에서 이 의견이 나왔다고 한국 코로나키트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미국 의원의 입을 빌어 강조한 것이다.
한국일보의 이 기사를 쓰게 된 최초 배경은 의학채널 ‘비온뒤’를 운영하는 의학 전문기자 홍혜걸 씨다. 홍 씨는 '황우석 사태' 때 황 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홍혜걸 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 스탠포드대 박승민 박사님의 제보”라며 미 청문회에서 나온 마크 그린 의원의 발언을 옮겼다. 당시 그린 의원은 한국보다 키트 등의 대응이 느리다는 비판 방어를 위해 "한국의 키트 시험이 FDA 기준치에 부적절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그린 의원의 발언 한 구절만 들어 ”핵심은 한국 진단키트가 미국 FDA 기준에서 미흡하다는 것이고, 사실 여부 확인 이전에 세계 최고 권위자들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미국 국회의원이 말한 것이라 보도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검사 관련자들의 반론이 있어야 한다. 이게 사실이면 지금까지 국내 확진 검사 정확도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판”이라고 했다. 홍 씨의 이런 발언의 내심은 국내 코로나 키트에 문제가 있으니 검사 전문가들의 잘못을 추궁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마크 그린 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기사를 올린 한국일보는 홍 씨와 함께 소위 말하는 가짜뉴스의 확산자가 됐다. 홍 씨의 이러한 주장을 한국일보는 아무런 팩트 체크 없이 '카더라' 기사로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팩트 체크가 나오면서 한국일보와 홍 씨에 대한 네티즌의 질타가 이어지자 한국일보는 밤 10시 01분 기사 제목을 [한국 진단키트 신뢰성 논란, 미 의원 "적절치 않다" vs 질본 ""WHO 인정한 진단법"]이라고 제목을 바꿔 달고 내용도 살짝 바꿨다.
신문의 이런 행각을 두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상기 내용으로 한국일보를 비꼬는 흥미로운 게시 글 하나가 올라왔다.
1. 이 넘의 기사를 쓴 여자 기자는 사라지고 함께 썼다던 남자 기자가 기사 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2. 저녁 시간까지 몰래몰래 기사 내용과 제목까지 바꾸고, 3. 그 바뀐 내용에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vs" 으로 몰아가고, 4. 얼마나 급하게 바꾸었으면 제목에 WHO 앞에 큰따옴표(")를 두 개나 해 놓고 잠수 탔는지...
홍혜걸 씨의 사적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한 한국일보 기자 두 명과 홍 씨, 딱 세 명이 내지른 잘못된 정보물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 질본 책임자와 국내 방역 전문가는 물론 수많은 네티즌까지 팩트 확인을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한국일보 보도를 접한 식약처는 ”국내에서 사용 중인 진단시약 5개는 모두 유전자 검출검사법(RT-PCR)을 사용한다”며 ”미국 그린 공화당 의원이 언급한 건 항체검사법인 듯한데 이는 국내 승인 제품과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식약처는 “국내에서 사용 중인 5개 제품들에 대한 진단정확도는 대한진단검사의학회가 모니터링하고 있다”라면서 “현재까지 진단오류에 대한 부작용은 보고된 바 없다”라고 덧붙였다.
질병관리본부도 “코로나 진단에 실시간 유전자증폭검사법(RT-PCR)을 쓰고 있으며, 최근 미국 의회에서 언급된 항체 검사법은 일절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며 "우리나라의 진단검사법은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진단검사의학회등이 실시한 여러 번의 성능 평가를 거쳐 그 정확성을 검증받았다”라고 확언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코로나19와 싸워야 할 판에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그 언론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과 싸우는 게 더 일이네. 사회적 거리두기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비판했다.
진단검사의학회 코로나19 TF 팀장으로 활약 중인 세브란스 진단검사학과 이혁민 교수는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홍 씨와 한국일보 보도를 팩트로 조목조목 짚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를 둘러싼 많은 혼란들이 있다. 이런 혼란들이 부딪히면서 잘못된 정보들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키트 자체가 굉장히 강점을 갖고 있는 건, 다들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민간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검사 건수가 20만 건이 아니라 40만 건이다. 질병관리본부가 환자 추적 관리용으로 한 검사는 카운트하지 않고 있는데, 다 합치면 전 세계 검사 수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나온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검사법이다. 국내에서 쓰고 있는 것은 가장 민감도나 특이도가 높은 검사법인 데다가 40만 건 이상의 데이터가 쌓여 있다”라며 ”그 와중에 진단검사학 전문의들이 그 결과를 보면서 판독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 오류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국내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는 PT-PCR 검사 방법으로 진단한다”라며 ”일부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진단검사의 정확도, 신뢰도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으셔도 좋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보도 이후 홍 씨에게 비난이 날아들면서 그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내가 가짜뉴스 생산자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라며 "억울하다"라고 했다.
"억울하다. 나는 한 번도 우리 키트가 엉터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출신 미국 공화당 의원의 멘트가 나왔는데 언론이 침묵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라고 하소연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내 확진검사의 정확도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판"이라고 써서 한국 코로나 진단에 대한 온갖 소동을 일으켜 놓은 홍 씨의 처음 주장을 분명히 봤던 터로 지금 와서 "나는 한 번도 우리 키트가 엉터리라고 말하지 않았다"라는 발언의 맥락이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