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허엽기자] 1980년대 중반 스웨덴에서 연수차 반년 동안 머문 일이 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의 최대 현안은 산성비였다. 검은 침엽수림 사이에 보석처럼 점점이 박힌 호수가 차츰 산성을 띠면서 수천 곳에서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그런데 산성비를 일으키는 황과 질소산화물이 스웨덴보다 영국, 독일, 폴란드 등에서 오는 것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신문 만평에서 영국을 종종 '유럽의 더러운 늙은이'로 그렸다.
귀국해서 산성비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나라의 대기오염과 그에 따른 산성비도 심각했다. 빗물의 산성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농도지수'(pH) 같은 어려운 단위도 종종 신문 지면에 올랐다. 그런데 호수가 죽어간다는 조짐은 없었다. 전문가들 설명이, 황사에 포함된 알칼리성 물질이 내려앉아 산성을 중화시켜 준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과 황투(황토) 고원에서 날아오른 흙먼지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 주목받는 현상이다. 태평양 밑바닥과 그린란드, 알프스 산에서도 황사 퇴적물이 발견됐다. 일본과 중국 과학자들은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2007년 5월 발생한 황사가 13일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반이나 돈 뒤 북서태평양에 내려앉은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황사는 대류권 상부에 새털구름을 만들어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영양분이 부족한 바다에 비료를 주는 구실도 한다.
황사의 계절이 왔다. 그런데 요즘 황사는 철을 모를뿐더러 단순한 흙먼지도 아니다. 공업지대를 통과하며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머금은 채 날아오기도 한다. 황사 자체에도 초미세먼지가 들어 있어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엊그제처럼 황사와 미세먼지가 한꺼번에 뒤섞여 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대기질 예보'는 겨울과 봄 휴대전화에서 가장 자주 보는 앱이 됐다.
서울의 미세먼지는 2012년 바닥을 찍은 뒤 해마다 악화하고 있다. 중국의 기여가 30~50%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중국발 대기오염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유차 증가 등 우리가 내보내는 오염 비중이 아직은 더 크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대기오염물질 가운데는 우리가 수입해 쓰는 중국산 공산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것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스모그 문제가 국가적 과제가 된 중국도 지난해 600만대의 낡은 차량을 폐차하는 등 갖은 애를 쓰고 있다. 12일 열린 제2차 한·중·일 대기오염 정책대화에서 중국 환경보호부의 대기오염 실무책임자는 "지난해 오염 개선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74개 주요 도시의 지난해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당 64마이크로그램이었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이 65면 주의보가 발령된다. 그런 날이 1년 내내 계속된 셈이다.
국경을 넘어선 대기오염이 동북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오염물질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떨어지고, 동아시아의 공해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 미친다. "오늘 당신이 마시는 공기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열흘 전 공장과 자동차와 부엌 화덕에서 나온 유해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는 2010년 대기오염의 장거리 이동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지구에는 하나의 대기가 있을 뿐이다.
동아시아는 유독 심하다. 황사와 스모그만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다. 원전 사고, 백두산 화산 폭발,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환경재난 후보도 도사리고 있다.
국경을 넘는 대기오염과 환경재앙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은 국제협력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오래 걸린다. 유럽 산성비의 사례가 그렇다. 그러나 대기오염 감축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국은 오히려 유럽보다 나은 이웃일 수 있다. 중국의 대기오염이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황사와 스모그가 짜증나고, 그것을 보내는 중국이 밉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오염을 먼저 개선하고, 중국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다. 중국 환경보호부가 대기오염에 맞서자며 내건 표어처럼 말이다. "함께 호흡하고 같이 싸우자."
중부 지역 대부분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지난해 겨울 내내 국제적 기준치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한 달의 절반가량 기준치를 웃돈 지역도 있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19일 공개한 국립환경과학원의 전국 초미세먼지 농도 분석 결과를 보면 2013년 12월~2014년 3월 사이 중부 지역 초미세먼지 측정소 16곳 중 13곳의 월평균 농도가 선진국들의 기준치인 일평균 25~35㎍/㎥를 크게 넘어섰다.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역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안전 기준치(연평균 10㎍/㎥)와 견줄 때 전국의 모든 측정소가 1.5~3.5배 웃돌았다.
한국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기준치는 50㎍/㎥로 미국·일본 35㎍/㎥, 호주 25㎍/㎥, 세계보건기구 권고기준 25㎍/㎥보다 훨씬 높다. 세계보건기구는 2013년 10월 초미세먼지를 석면·자외선·담배연기와 같은 발암물질로 분류해 발표했다.
서울 구의동, 경기 의왕·이천시, 인천 구월동 등에선 선진국보다 느슨한 한국 기준치 50㎍/㎥도 넘을 정도로 강한 초미세먼지가 이어졌다. 서울 구의측정소의 월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3년 11월 36.7㎍/㎥, 12월 56.7㎍/㎥를 기록했으며, 2014년 4월 48.7㎍/㎥까지 6개월 연속으로 선진국 기준치를 넘어섰다. 충북 청주, 충남 천안, 인천 구월동 측정소는 2013년 1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7개월 연속, 경기 의왕측정소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선진국 기준치를 넘어섰다. 경기 이천측정소는 2014년 1~5월 내내 기준치를 넘어섰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밝힌 월평균 농도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과 낮은 날을 종합한 수치여서 겨울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에도 기준치를 넘어선 날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환경공단이 공개한 최근 한 달 사이 초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 결과 일부 지역에선 한 달의 절반가량 기준치를 넘어선 농도가 나타났다. 충남 지역이 선진국 기준치 35㎍/㎥를 넘어선 날이 16일로 가장 많았고, 강원이 14일로 뒤를 이었다. 경기·광주 지역은 13일간 초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를 넘어섰다. 인천은 9일, 서울·대구는 8일 동안 기준치를 웃돌았다.
충남에서는 황사가 한국을 덮쳤던 지난달 23일 한국 기준치인 50㎍/㎥의 2배가 넘는 108㎍/㎥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과 경기에서도 같은 날 70㎍/㎥와 78㎍/㎥를 각각 기록했다.
장하나 의원은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 기준치는 초미세먼지의 건강 위험성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있다"며 "기준치를 낮추는 동시에 초미세먼지 농도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량부제, 화력발전소 축소 등의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