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명수 기자] 5년이 지나서야 2015년 11월 고(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직사살수(물줄기가 일직선 형태가 되도록 해서 시위 참가자에게 직접 쏘는 것)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백남기 씨 유족들이 직사살수 행위를 지시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직사살수와 그 근거 규정이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며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살수차를 이용해 물줄기가 일직선 형태로 백남기 씨에게 도달되도록 살수한 행위는 백남기 씨의 생명권 및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하는 결정을 선고했다.
농부였던 백남기 씨는 앞서 2015년 11월 14일 오후 7시쯤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뒤 이듬해 9월 25일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백 씨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하고 넘어진 백 씨를 구조하러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도 20초 정도 계속 물대포를 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을 대리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당시 직사살수 행위와 경찰관직무집행법·위해성경찰장비사용기준등에관한규정·경찰장비관리규칙 등 규정이 백 씨와 가족의 생명권, 인격권, 행복추구권, 집회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는 불법 집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신체의 위해와 재산·공공시설의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므로 그 목적이 정당하다”면서도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 당시 백남기는 살수를 피해 뒤로 물러난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 기동버스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 당시 억제할 필요성이 있는 생명·신체의 위해 또는 재산·공공시설의 위험 자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사살수는 물줄기가 일직선 형태가 되도록 시위대에 직접 발사하는 것이므로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직사살수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히 초래됐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며 “부득이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에도,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아 거리, 수압 및 물줄기의 방향 등을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로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백남기의 행위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됐다고 볼 수 없어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이 사건 집회 현장에선 시위대의 가슴 윗부분을 겨냥한 직사살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인명 피해의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으므로, 피청구인들로서는 과잉 살수의 중단, 물줄기의 방향 및 수압 변경, 안전 요원의 추가 배치 등을 지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를 통해 백남기가 홀로 경찰 기동버스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는 행위를 억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은 거의 없거나 미약했던 반면, 청구인 백남기는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는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하지 못했다”며 “이 사건 직사살수 행위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청구인 백남기의 생명권 및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국가가 자행했던 폭력에 대한 뒤늦은 반성”이라며 “고 백남기 농민의 참담한 죽음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공권력에 의한 살인’의 진상은 명명백백히 밝혀져 두고두고 기억되며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