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이 본격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공소제기한 혐의 5개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이 12일 열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일이 다가오는 등 국정농단 재판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의 항소심을 맡은 정형식 부장판사는 오늘(28일) 오전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향후 재판 일정을 정리했다. 정식 재판인 만큼 지난달 열린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피고인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25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48일 만에 공개 법정에 나온다.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최지성(징역 4년) 전 삼성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징역 4년) 전 미래전략실 차장도 모습을 드러낸다. 박상진(징역 3년·집행유예 5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 전 삼성전자 전무도 출석한다.
항소심에서는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의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 관계, 재산국외도피 인정 여부 등을 두고 특검팀과 변호인단 간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준비기일에는 출석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은 다음달 12일 첫 정식 재판 때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1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공판이 이뤄졌고 증인도 여러 명 신문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는 많은 증인을 부르진 않을 예정"이라며 "대신 법리적 다툼이 주된 진행이 될 것 같다"고 심리 계획을 설명했다. 앞서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특검팀도 1심 재판부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 일부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고 이 부회장에게 적은 형을 선고한 데 반발해 항소했다.
우선 1일차 기일엔 이 부회장의 승계 현안 등 '부정한 청탁'의 필요성 등을 다루고 2일 차엔 최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 관련 쟁점을 다루기로 했다. 재판부는 양측이 방대한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해 사안마다 다투고 있는 만큼 3차례의 공판 기일을 열어 주제별 양측의 항소 이유를 듣기로 했다. 1심 재판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놓고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오갔다고 판단하고 그에 따른 뇌물 제공, 횡령 및 재산 국외 도피, 범죄수익 은닉, 국회 위증 등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특검팀은 1심 재판부가 인정한 경영권 승계뿐 아니라 ‘개별 현안’이 존재했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 대가로 현안 해결을 부탁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차엔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등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 양측 입장을 듣기로 했다. 양측의 이유 설명이 끝나면 그다음 기일부터는 본격적인 증인 신문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특검 측은 오늘 우선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에서 3차례나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건강 등의 이유를 들어 모두 거부했다. 최씨는 한 차례 증언했지만, 상당수 질문에 거부권을 행사해 제대로 된 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 측도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등 모두 10명의 증인을 일단 신청했다.
특히 특검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그에 따른 신규순환출자 고리 해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추진 등이 개별 현안이었다는 점,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자리에서 현안 해결에 대한 묵시적 청탁뿐만 아니라 명시적 청탁도 있었다는 정황 증거들을 제시할 전망이다. 이에 맞서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그간 이 부회장이 그룹 안팎에서 이미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어 별도의 승계 작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승계 작업 자체가 없었던 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이를 도와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고, 이에 따라 부정한 청탁 역시 있을 수 없다는 게 변호인단의 논리다. 변호인단은 또 특검팀이 지목한 합병 등의 개별 현안 역시 계열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뤄진 일일 뿐이며 이 부회장의 관여가 아니라 각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결과라고 반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적인 증거조사는 1심 재판에서 충분히 이뤄진 만큼 항소심에서는 필요한 부분에서만 효율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이다. 재판부는 10월 목요일마다 재판을 열고, 11월부터는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씩 재판을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