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분석된 문건을 보면 박근혜 정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70)이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반대세력 무력화를 지시하고, 국정교과서에 비판적인 불교계 및 해외교포들에 대한 여론전을 주문한 사실이 13일 확인됐다. 이 실장은 2015~2016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교과서 찬성 여론 확산을 위한 깨알 같은 지시들을 청와대 수석들에게 내렸다.
2015년 7월 27일자 회의 문건에는 '비서실장 지시사항'이란 제목 아래 회의 내용이 정리돼 있다. 추경예산을 예술계 정부비판단체에 지원하는 것은 문제라며 단체의 활동내용, 성향 등을 분석해 지원을 결정하라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을 통해 확인한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 따르면, 이 실장은 2016년 1월31일 회의에서 “2월 발간 예정인 EBS 수능 역사교재가 70% 수능과 연계된다는 점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잘 알려 소위 진보교육감들의 대안교재를 무력화시키는 한편…”이라고 지시했다.
또 2015년 11월18일 회의 문건에는 "문체부가 좌성향 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민감한 대입 문제와 국정교과서를 연관지어 ‘여론전’을 펼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당시 국정교과서에 반발하는 시·도교육감들이 대안교과서 제작을 추진하자 방해공작을 지시한 것이다.
국정교과서 이름짓기와 홍보 방식 등 ‘깨알 지시’도 내렸다. 이 실장은 2015년 10월9일 회의에서 “ ‘국정화’라는 직접적 표현을 여기저기 반복해 쓰지 말고 ‘올바르고 균형 잡힌 교과서’로 취지가 강조되게 할 것”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역사교육 정상화’만은 꼭 해야 한다는 취지의 감성적 호소문구 포함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교육부는 그해 10월 행정자치부 정례반상회에 ‘올바른 역사교과서 이렇게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국정교과서 홍보 광고를 내려보냈다.
이병기 전 실장은 해당 문건들에 대해 여러 수석실이 회의에서 얘기한 업무 내용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그해 11월14일 회의에선 민정수석과 교육문화수석 등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불교계 반응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불교계에 국정화 찬성 여론 확산을 주문했다. 이 실장은 심지어 청와대 불자들 모임인 ‘청불회’ 회장에게도 같은 지시를 내렸다.
또 이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한 적이 없고 특검 조사에서도 문제가 없어 기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문건을 통해 드러난 이 실장의 이 같은 행태는 2015년 10월23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들과 배치된다. 이 실장은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상일 의원이 “청와대 차원에서 지금까지 (국정교과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교육부와 협의를 했느냐”고 하자, “청와대가 직접 교육부에 어떤 지침을 내린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