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다가오는 10월 5일 천안함 항소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는 터라 차분하고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의료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간 갈등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여섯 번째 브리핑으로 그 문제에 대한 고언의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의료정책과 관련하여 정부와 의료인 간의 갈등구조가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고 있고 그로인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손실이 너무나 크고 수습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주어진 임무와 사명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하시고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대통령님께서 이번의 사안을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도록 진지하게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계에서 근무한 10년의 경험
코로나-19 초창기 마스크 대란과 관련하여 대통령님께 드렸던 ‘세 번째 브리핑’글에 대해 ‘신상철 하면 천안함’인데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하니 뜬금없어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만, 지나온 저의 경력과 경험 가운데 의료계에서 근무한 10년의 세월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항해사 시절 싱가폴에서 구입한 손바닥만한 미니컴퓨터 <CASIO FX-750>는 저를 컴퓨터의 세계로 안내하였고 결국 프로그래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BASIC을 시작으로 dBase, FOXBASE, CLIPPER를 거쳐 ASP, PHP까지 오로지 책으로만 저는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전산 프로그래머로서 저의 첫 작품은 병원의 의료보험관리 소프트웨어였고 그로 인해 의료기관의 전산실장을 시작으로 원무, 총무, 관리, 기획 등 병원행정업무를 겸하였으며 그 기간 대학 보건행정학과 겸임교수로 의학용어, 원무관리, 병원전산, 의료보험청구 과목 등을 8년간 강의하였습니다.
정확하게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저는 의료계에 몸담았고 병원행정과 의료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만, 2002년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대선에 출마하시면서 제 인생의 여정은 정치논객·칼럼니스트로 방향을 틀어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운영을 거쳐 결국 천안함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저의 의료계 경험을 외람되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대통령님께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조언을 드리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함이며 대통령님께서 관련부처로부터 받으시는 보고와는 다른 시각과 분석을 참고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마주 보고 달려오는 두 열차
현재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어느 쪽이든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전공의·전임의 파업이 시작되고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미복귀자를 고발하자 의사협은 무기한 투쟁을 선포하였으며 정부는 예정대로 의대생 국시를 강행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이 사태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며 그 가운데 위급하고 중증인 국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큼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도 알고 의협도 알며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 또한 얼마든지 예측가능했던 일입니다.
정부든 의협이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오로지 ‘최초의 상황’즉 ‘원점’으로 돌아가 그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잘못 꿴 단추를 찾을 수 있고 그나마 해법의 실마리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곁가지만 붙들고 논쟁하는 형국
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국민들 대부분은 이번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위중한 상황이니 의료인은 파업철회하고 복귀하라>는 정부의 주장과 함께 언론과 방송 그리고 칼럼과 기사 또한 <코로나-19와 의사파업>만을 대비시키고 있으니 국민들은 더더욱 사안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이라는 도그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와 관련부처에서 강행하고 있는 조치 또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러한 갈등은 불신의 씨앗이 되어 그 후유증과 함께 오래도록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사안의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 한 가운데에 <의대 정원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정책>이 있습니다.
의대 정원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
보건복지부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던 초기에 가족과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공교롭게도 의사, 간호사, 의료지원, 법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누군가 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의대 정원확대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고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적정하게 늘여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의대설립은 누가 입안했는지 모르겠지만 ‘닭대가리 정책’이라고 생각한다”였습니다. 표현이 좀 그렇긴 합니다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학비를 모두 국가가 부담해주고 졸업 후 10년 동안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여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한다> - 참, 말은 그럴 듯 합니다만, 전혀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대하는 바대로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잘못된 졸속의 정책입니다.
의대를 졸업한 이후 10년이면 기껏해야 <의사로서의 수련기간>에 불과합니다. 인턴 - 레지던트 - 전임의(펠로우) 그에 더해 남성의 경우 군 복무까지 포함하면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의 10년 수련기간>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뒤엔? 자유롭게 서울이든 수도권이든 대도시에 가서 수련과목과는 다른 인기있는 과목으로 개원을 하거나 취업 근무해도 되니 <당장 자녀들을 재수나 삼수를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기다렸다가 공공의대 보내는 게 낫겠다>는 학부모들의 반응도 나오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교육인프라와 지역의료 환경에 대한 분석
남원의 서남의대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합니다. 서남의대가 설립되어 학생들을 모집하여 교육하였으나 부실교육 논란과 함께 수련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폐쇄되었던 뼈아픈 사태를 경험했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의료정책은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인프라에 대한 고민, 의료시설과 장비의 확충 그리고 교수진과 지역 의료환경에 대한 종합적이고 면밀한 분석을 통해 차분하게 접근해야 하며 그 논의의 중심에는 정책입안자와 의료실무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공의대를 설립하였음에도 그 지역의 의료환경을 개선시키지도 못하고, 공공의대 졸업자들이 10년 후 그 지역에 머무르지도 않을 가능성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지역의대 설립을 갈망하는 지역의 국회의원들에게 선물하나 주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치적 행위인 것입니다.
정부가 마치 한발 물러선 것처럼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논의를 미루자>는 주장은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는 얘깁니다. 그냥 쿨하게 <백지화>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백지화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부동산 대란 때 <그린벨트 문제> 백지화 했듯이 그렇게 백지화 하시면 될 일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전쟁에 나간 군인이 전장을 떠난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만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사안은 전쟁이 벌어졌는데 중대장이 핵심 병력을 절벽으로 끌고 가려고 한 상황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갓 소위 계급장 단 소대장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단장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정부당국의 불필요한 악마화를 멈춰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와 의사들 간의 갈등, 국민과 의사들 간의 갈등을 넘어 의사와 간호사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스러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던 신뢰와 헌신에 금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의사든 간호사든 의료지원 부서든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희생이 몸에 벤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언제나 이기는 편에 서셔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이 싸움에서 지는 모습을 국민이 보는 것은 매우 민망할 것 같습니다. 반드시 이기는 편에 서셔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이 싸움에서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그릇된 정책을 수립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코로나-19로 아수라장인 시기에 그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이 두 번째 잘못이요, 끝을 보겠다고 몰아가는 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이 상황이 곪아지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옷을 벗는다 해도 만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의사협 또한 이번 싸움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길바닥에 나선 모두가 피투성이가 된 현실 자체만으로 이미 이기지 못한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파업을 해야만 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들은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일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모두를 이기는 쪽으로 이끄십시오. 그것이 해법입니다. 모두가 이기는 방법은 <백지화> 뿐입니다.
고발을 철회하시고 의사고시를 연기하십시오
어제 보건복지부가 10명을 고발하였습니다. 지금 파업하고 있는 인원수가 얼마인데 10명만 고발했는지 조금 의아한 느낌도 듭니다만 <시범케이스>로 몇 명을 사법처리하여 본을 보이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공권력의 권위는 그런 방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대고시 연기하라고 하십시오. 파업하느라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였을 학생들 공부할 시간을 주십시오. 고시취소 결정이 본인의사인지 전화로 묻고 시험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체크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나중에 의대 졸업반 학생들과 학부모 광화문에 모이면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제자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당한다면 집단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의대 교수진과 대학병원 의료진의 경고를 무겁고 중하게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왜 그분들이 그렇게 말하는지 그 본질을 보셔야 합니다. 그 상황 자체가 바로 <의료붕괴>의 단초이며 지금은 <균열이 진행중인 상황>입니다.
초유의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
지난 날을 돌이켜 우리 역사상 <의료계 파업>이 이토록 심각한 적이 있었습니까? 코로나-19 재확산과 같은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의료계가 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 모두가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정책입안과 졸속 발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대통령님께서 직시하실 수 있다면, 그 해법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언을 드립니다.
대통령님께서 문제의 의료정책에 대하여 <백지화>를 선언하시기에 명분이 필요하시다면 그것은 <국민이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합당한 명분이 될 것입니다.
부디 이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내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2020년 8월 28일
진실의길 대표 신상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