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지난 주에 드린 여섯 번째 브리핑에 관한 후속 보완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의대 국시를 1주일 연기 발표함으로 한숨 돌리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만 그렇다고 의대생들이 바로 국시에 합류하거나 재학생들이 동맹휴업을 접고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특히 의대생, 전공의·전임의 그리고 의사협 간에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듯이 보이지만 기실은 독자적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러한 사실은 이번 사안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의사협이 정부당국과 잠정합의안을 도출하였음에도 전공의협의회가 그것을 거부한 사례가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 그리고 관계당국자들은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전체 조직이 어느 특정 지도부 혹은 대표자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이번의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는 어떠한 해결점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사명감으로 압박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위중한 시기> 혹은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과 같은 논점은 이번 사태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이미 사직서를 던지고 있는 마당이고 보면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지노선이 공고히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명분입니다. 그것도 <확고한 명분>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을 넓혀서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엄중한 시기에 의료진 파업이 타당한가?>라는 비판이 가능하다면 동일하게 <코로나-19로 정신없는 시기에 부실한 정책이슈를 던지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 명분이 더 확실한가?>라는 화두만 남게 되는 것이고 파업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명분이 더 크고 강하다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당국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런데 사명감을 앞세워 호소와 비난과 비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설득력은 고사하고 어떠한 진전도 일구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부·여당의 중대한 인식 오류 엊그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한정 의원께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하신 말씀 속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인식이 얼마나 커다란 오류를 안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한정 의원께서는 최대집 의사협회장에 대해 “의사협회의 대표라기보다 극우난동꾼”이라며 “의료파업을 선동하고 국민을 호도하고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의 전광훈”이라는 비난도 노골적으로 덧붙였습니다. 최대집 의협회장이 극우성향인 것도 맞고 극우시각의 정치적 발언을 일삼은 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극우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것 또한 틀리지 않습니다. 최대집이라는 분이 의사협회장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리고 이후의 행보와 언행을 보았을 때 극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것 역시 맞습니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게 비추어지는 인물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그는 현재 모든 의사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선출방식이 어떠했는지, 도대체 어떤 후보들이 경합 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의 성향과 인격의 함량도 모르고 표를 몰아 주었던 것인지 등등 우리가 고민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현재 파업을 이끌고 있는 그는 모든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표자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최대집이 의료파업을 선동하고 있다”고 하면 모든 의사들이 최대집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최대집이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면 모든 의사들 또한 국민을 호도하고 있으며, “최대집이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하면 모든 의사들은 그저 생각 없이 병풍 쳐주는 들러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중진의원께서 이러한 말씀을 국회에서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여정 가운데 병원에서 10년을 근무하였던 경험에 근거한 저의 분석과 판단은 이렇습니다. <정부 여당이 부실하고 그릇된 정책을 졸속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극우성향인 최대집 의협회장에게 커다란 명분을 안겨다 준 꼴이 되었다>라고 판단합니다. 그 사실을 정부 여당은 아셔야 합니다. 최대집에게 명분과 힘을 실어준 당사자가 바로 정부여당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하나 인식의 오류 - 파업 의사결정 체계 김한정 의원께서 최대집 의협회장을 꼬집어 비판하신 데에는 이번 파업사태의 최고 정점에 최대집 의협회장이 있고 그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모든 파업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의사협에서 합의점에 도달했지만, 전공의들이 거부하고 있고 의대·의전원생들과 재학생들 역시 의사협이나 전공의협의회와는 전혀 별개로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찬가지로 의대 교수진과 대학병원 교수진들 역시 어떠한 연결고리와 협의체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경한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위중한 사안에 대해 오로지 정부 여당만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해 제대로 된 조언을 하는 참모들이 없다는 사실에 저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백지화>만이 유일한 해법 그리고 합리적 정책 방향은? 제가 지난 번 글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백지화>하시라고 권고를 드렸던 이유는 그것이 바로 <원점부터 논의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가라앉은 뒤>에, <안정화된 이후> 등과 같은 수식어는 불신의 씨앗만 남기게 되어 진정성과 신뢰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과연 합리적인 정책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 당국뿐만 아니라 의료실무진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하면서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만, 외람되이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남 창원에는 의과대학이 하나도 없지만 대학병원급이 두 곳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과 창원경상대학교 병원입니다. 물론 각 대학병원(의료원)에서 그렇게 투자해도 될 만큼 시장이 된다고 보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만 여건이 미흡한 지역인 경우라 하더라도 합리적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기존의 대학병원이나 의료원 혹은 대형병원들이 전국의 지역에 선별적·순차적으로 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여 안정적 운영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의료인프라가 종합적으로 갖추어진 상태로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 중앙과 지역 분원과의 의료진 교류와 파견 등의 업무는 해당 대학병원이나 의료원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므로 지역에 의사가 없다는 얘기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지역 분원 설립에 앞서 미래를 예측하여 의사든 간호사든 지원부서든 인력 충원에 대한 판단은 면밀한 사전 분석과 합의를 통해 교육기관에 적정한 정원확대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랜차이즈 대형병원이 지역의료를 독식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지자체나 지역민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되었든 혹은 상당기간 인큐베이팅을 거쳐 지역 의료원화 하는 방안이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나름아닐까 싶습니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논쟁은 금물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 여당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만, “좋다, 지역에 분원을 설립하고 의료원을 신설한다 치더라도 필요한 인력이 그만큼 필요하니 공공의대를 설립해 미리 지역에서 근무할 인원을 확충하는 계획을 세우자고 하는 것인데 그게 왜 잘못된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것이 바로 다람쥐 챗바퀴 도는 논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공공의대 설립하는 비용, 무상교육 시키는 비용 등 모두 국민의 혈세인데 그만큼 투입한 효과가 지역의료 해소의 결과로 남게 되느냐를 보았을 때, 그것이 <공허한 희망>이란 것입니다.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들은 그것이 보이는데 정부 당국의 관료들은 왜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합일점에 다다르지 못하고 끝없는 평행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 논쟁은 <정부의 정책에 의사들이 반발하여 파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실패의 늪에 빠지게 될 정부의 정책을 사전에 차단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역 의료환경은 의사가 아닌 의료기관이 중심 의대정원확대와 공공의대설립 정책의 바탕에는 <지역에서 근무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대정원확대와 공공의대설립 정책이 그것을 해소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역 의료환경의 중심은 의사가 아닌 의료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의사가 없다면 의료기관이 부실해지거나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을 보완하고 보장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근무할 의사>가 나은지 아니면 <중앙의 대학병원, 의료원 혹은 지역의 대형병원의 코를 꿰는 것이 나은지> 판단해 보면 알 일입니다. 대학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남성의 경우 군복무 포함)를 마치고 나면 10년 세월에 육박하게 되는데 지역에 계속 남아주기를 무슨 수로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평생 지역에만 묶어 둘 수 있는 법안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는 신참 의사들만 머물다 떠나는 곳으로 전락하지 않겠습니까. 의료 접근성에 대한 고민 전국이 1일 생활권에 진입한 지 오래고 보면 암과 같은 중증의 환자분들은 지역 의료기관이 아닌 수도권 대학병원 혹은 대형병원에서 수술하고 항암 등 후속치료를 지역에서 하는 사례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만큼 의료 접근성이 높아진 결과일 것입니다. 문제는 수도권과 대도시간의 의료접근성이 아니라 지방의 도·농간 의료접근성이며 현재 불거지고 있는 사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의 고민일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지역에 의사가 늘어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내 신뢰할만한 의료기관이 있는지 여부 그리고 환자분들이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접근성을 높이는 시스템과 인프라에 관한 방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공공의대에서 양성된 의료인들이 지역 의료에 기여하기를 바라기보다 지역의료 환경을 개선시키고 지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수준의 의료기관이 순차적으로 설립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료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것이 순리이며 합리적인 접근 방법일 것입니다. 과거 한나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께서 진주의료원이 적자에 허덕인다고 강제 폐쇄하였던 사례를 복기해 본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료 환경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은지 많은 시사점과 함께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20년 9월 2일 진실의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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