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국정원의 대선개입 수사 방해와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하루 전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함께 일했던 담당 팀장과 숨지기 전 수차례 통화한 사실도 확인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정모(42)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실 변호사는 지난달 23일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지 7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그는 검찰 조사 이튿날 동료들에게 “저는 한두 번만 더 가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 저희를 강도 높게 조사했겠어요”라며 가벼운 농담도 나눴다. 정 변호사는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실무자였다.
숨진 정 모 변호사는 지난 2013년 대선개입 수사 방해를 주도했던 실무TF에서 일했다. 해당 검사들이 정 변호사를 회유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던 그가 조사 사흘 후엔 사색이 된 얼굴로 출근했다. 정 변호사는 동료들과 산책을 하면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너무 힘듭니다. 제가 지금 책임지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아요. 제가 다 뒤집어써야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어요.”
내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정 변호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그 사람들(당시 파견검사)이 죗값을 치르면 되는데 왜 네가 모든 걸 책임진다고 생각하느냐”며 “책임질 일 전혀 없다. 너한테 지시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지. 지시한 대로 했는데 무슨 책임을 지려고 하느냐. 오버하지 마라”고 다독였다.
정 변호사가 “잘 지내세요”라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자 검찰에서 파견 나온 한 검사는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타이르기까지 했다. 정 변호사는 이 무렵 국정원의 검찰 수사 방해 공작을 주도한 옛 파견검사들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가 다음 날 하루 휴가를 내자, 그런 그를 걱정하던 동료들은 행선지를 전화로 알려 달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29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던 2차 조사도 30일로 하루 미뤘다. 정 변호사는 28일 강원도 원주에서 고교 동창을 만났다. 그는 “요새 회사일로 너무 힘들다. 옷을 벗고 나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료수를 한 병 시켜서 반병도 못 마셨다. 그는 “힘들어 보인다. 자고 가라”는 친구의 말을 뒤로 한 채 강릉으로 떠났다.
지난 29일 오전 10시쯤 강원도 강릉의 한 해안도로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29일 오전 7시에 정 변호사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바닷물에 빠진 그를 행인이 신고했고 해양경찰이 구조했다. 해경은 2시간가량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돌려보냈다. 정 변호사가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같은 날 오후 5시47분 강원도 춘천 인터체인지(IC)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 정 변호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일 속초해경의 말을 종합하면, 정아무개(43)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오전 9시54분께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신리천교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인근에서 이를 본 목격자가 신고했고, 출동한 해경과 119구급대원 등이 오전 10시2분께 정씨를 구조했다. 일반적으로 해경은 투신자를 구조하면 병원으로 옮기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보호 조처를 한다. 하지만 정씨는 병원 이송을 강하게 거부했고, 가족 등 보호자의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해경은 정씨를 인근 파출소로 데려가 몸을 녹이고 안정을 취하게 했고 2시간 정도 뒤에 정씨는 스스로 파출소를 나섰다.
속초해경 관계자는 “본인이 병원 이송과 보호자 연락처 공개 등을 강하게 거부했다.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로 보호 조처를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파출소를 나선 정씨는 당일 오후 5시46분께 춘천 톨게이트를 지나 춘천에 도착했다. 정씨는 다음 날인 30일 밤 9시8분께 춘천 신북읍 소양강댐 인근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정 변호사는 자신의 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조수석 바닥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소주 2병이 놓여 있었다.
정 변호사는 2013년 당시 국정원의 수사 방해 등과 관련해 지난달 23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당시 국정원 실무 티에프의 수사·재판 방해 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뒤 추가 조사를 앞두고 연락이 끊겼으며 국정원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국정원 동료들은 30일 오전 정 변호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며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변호사의 형 정모씨가 경기도 고양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30일 밤 정 변호사가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행적은 불분명하다. 그의 그랜저 승용차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번개탄을 언제, 어디서 샀는지도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시신으로 발견된 지 사흘 만인 2일 경찰은 그가 홀로 살던 오피스텔을 유족과 함께 찾았다. 정씨는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했던 동생이니 유서를 남겼을 것”이라 말했지만 유서는 없었다. 개인 컴퓨터 안에도 자살을 짐작케 하는 단서는 없었다. 정 변호사는 국정원과 가까운 경기도 과천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방을 얻어 살았다. 가족들에게도 정확한 주소를 알리지 않았다. 그의 오피스텔엔 당장이라도 출근할 수 있을 것처럼 세탁된 와이셔츠가 걸려 있었다. 그는 검찰 조사 후 가족들에게 전화 한 통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2013년 당시 국정원의 수사 방해 등과 관련해 지난달 23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당시 국정원 실무 티에프의 수사·재판 방해 등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뒤 추가 조사를 앞두고 연락이 끊겼으며 국정원에도 출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