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박나리 기자 = '분지' 등 풍자소설을 통해 민족자주성 등을 대중적으로 고취시키고 확산시킨 해학문학가 남정현 선생(1933년 12월 13일 충남 당진 출생, 대전 사범고등학교 졸)이 약 15일 동안 투병하다가 21일 오전 10시경 도봉구 한일병원에서 작고했다.
빈소는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예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며, 저녁부터 문상객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가족으로는 아들 남돈희(60세,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부장, 010-9059-3769), 딸 남진희(51세, 주부), 며느리 나명주(53세, 참교육학부모회 전국회장), 사위 우승훈(54세, 마취과 의사) 등이 있다. 발인일시와 장지 및 장례형식 등은 아직 미정이다.
남정현 선생은 1958년 자유문학에 〈경고구역 警告區域〉과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모의시체 模擬屍體〉(자유문학, 1959. 7), 〈누락인종 漏落人種〉(자유문학, 1960. 3), 〈너는 뭐냐〉(자유문학, 1961. 3), 〈혁명이후〉(한양, 1963. 10), 〈분지 糞地〉(현대문학, 1965. 3), 〈허허(許虛) 선생〉(문학사상, 1973. 2) 등을 발표했다.
현실의 부조리와 병폐를 풍자적으로 다루는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196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대표작 <분지>는 강대한 외세에 의해 식민지적 삶을 살고 있는 민족의 현실을 풍자했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문단 내에서 잠시 문체와 현실풍자가 화제가 되었을 뿐 이로 인해 옥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이 작품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 5월 8일자에 실려 중앙정보부에서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결국 남정현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7월 9일 긴급 체포되어 며칠 후 검찰로 송치되었다가 보름 만에 법원의 구속적부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되었고, 1년 후인 1966년 7월 23일 서울 지방검찰청 김태현 부장검사에 의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정식 기소되었다.
이에 한승헌·이항녕·김두현 변호사 등이 무료변론에 나섰고, 특히 안수길의 특별변호와 함께 이어령 등 동료문인들이 피고를 위한 증인으로 나와 변호함으로써 세상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후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이 기소내용과 작품이 갖고 있는 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공방을 벌이다가 7년을 구형받아 1심에서 유죄로 인정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모면했다. 항소심에서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1965년 한일협정이 이루어진 때의 문학적 의미와 함께 1960년대 문단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인 1974년에도 남정현 선생은 민청학련 사건 및 문인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되어 남산 중앙정보부에 강제로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서대문교도소에서 약 4개월 정도 구속되었다가 그해 긴급조치 4호가 해제됨에 따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