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기자] 2013년 국정원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체포했다.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제공한 간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이 드러났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의하면 2014년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을 수사할 당시에도 국가정보원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사무실’을 만들고 허위서류를 제출했다는 의혹이 6일 제기됐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잘못된 집행을 보여준 최신 사례이다. 국정원은 정보수집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다른 조직의 감시를 받지 않아 불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유 씨를 조사했던 국정원 권모 과장은 증거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자살을 기도했다. 협력자 김모 씨도 자살을 시도하며 국정원의 위조 지시를 폭로했다. 한겨레의 의하면 제보 편지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겼다. 제보 편지 내용을 보면, 당시 상황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밝혀낸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방해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최아무개 대공수사국장과 이아무개 대공수사처장 등이 모여 수시로 현안 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에서 이들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한 세부계획을 짰다고 한다. 당시 가짜사무실 대응 전략을 총괄 기획한 사람은 ‘김아무개 과장’이었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검찰이 대공수사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2014년 3월10일이었는데,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한 사무실은 2013년 댓글 사건 압수수색 때와 마찬가지 형식으로 가짜 컴퓨터들로 채워졌고, 댓글 사건 수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된 서천호 2차장은 당시에도 이 가짜 사무실을 둘러봤다고 한다. 편지는 ‘간첩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 국정원 대공수사국 간부들이 소속 변호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직원은 통화에서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수사3처 소속이던 변호사에게 ‘당시 네가 다 (조작된) 증거를 검토한 거 아니냐’고 책임을 씌우려고 해서 힘들어하다가 결국 사직했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 대법원은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보현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그에 앞서 검찰은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자 항소심에서 위조된 중국 공문서인 북한 출입경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한 혐의(모해증거위조)로 김 과장을 기소했었다. '사법 살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1974년 인혁당 사건 시절 중앙정보부의 잘못된 관행이 40년이 지난 국정원에서도 되풀이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기에 강하게 반발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페이스북에 왕재산 사건, 이석기 내란사건 등을 꼽으며 존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석기 사건의 경우에는 지난 2015년 대법원이 내란음모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한 바 있다.
또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7일 오후 이런 제보 내용을 공개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민변 쪽은 6일 “유우성씨 사건 수사 때 국정원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가 접수됐다”며 “편지에는 당시 국정원 관련자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모의 정황 등이 담겨 있어, 7일 이를 공개하고 의혹의 철저한 해소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 이름부터 '대외안보 정보원'으로 바꾸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의 핵심은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모든 수사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권 유린이나 증거조작 논란에 휩싸였던 과거와 확실하게 결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