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 묏비나리 원작자
[정현숙 기자]= 한국 진보·민중운동의 대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5일 투병 끝에 향년 89세로 영면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기완 선생은 이날 새벽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선생은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우리나라 민중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지난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른 백 선생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기도 하다. 또한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모태가 된 장편 시 ‘묏비나리’의 원작자로 알려졌다.
백기완 선생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날 정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민중운동의 큰 스승이 떠났다면서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서울시장 경선후보로 나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항상 앞에 서 계셨던 것 같다"라며 "그 그림자를 좇아가기에도 벅찼던 분. 시대의 등불을 이렇게, 또 잃었다"라고 슬퍼했다.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는 “시대의 어른, 백기완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라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선생님의 뜨거운 가슴으로 위로를 받았고, 선생님 불호령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었다”라고 SNS를 통해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사는 모습, 서로의 생각들이 조금은 다를지라도 선생님 앞에서는 모두 하나같이 깊이 머리 숙일 수 있었다"라며 "이제 모자란 우리들에게 누가 회초리가 되어주실까. 부고를 받아들고 휑한 마음 저 구석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한평생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 틔워 주신 그 자리에 저희들 잘 걸어가겠다. 그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라고 덧붙였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페이스북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일 때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뵈러 갔었다"라며 "내 청춘의 노래이자 험난한 시대를 넘어서야 했던 동지들의 노래. 그리고 끝내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렀던 노래"라고 회고 했다.
그는 "그 노랫말은 백기완 선생님의 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내가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 딸에게 주는 편지' 작은 책이었다. 딸에게 주는 편지형식으로 쓰인 이 책에 나오는 장산곶매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재야’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쓰신 분도 선생이시다"라고 돌이켰다.
강 전 수석은 “'인권이 침해당하고 자유가 박탈당하는 거친들에 곡식과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 풀이를 하셨다"라며 "우리 역사와 미래를 위하여 일평생 나무를 심어오신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 선생님, 평안하소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썼다.
서울시장 경선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SNS에서 “선생님이 계시던 대학로 부근 아담한 연구소로 아주 오래전 찾아뵈었던 일은 이제 선생님의 젊음이 담긴 추억이 되었다”라며 “통일에 대한 애끓는 열정을 토로하셨던 선생님. 저에게 ‘시원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하셨던 선생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다”라고 지난 기억을 소환했다.
그는 “이제 편히 쉬세요. 저희들이 잘 할게요”라며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친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 높여 다시 불러본다”라고 했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은 페이스북에서 "하나씩 둘씩 떠난다. 오늘 백기완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평생을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고난의 길이었고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이었는데 이제 그 짐을 내려놓으셨다. 평안하게 먼길 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지성용 신부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셨던 선생님. 동지들은 간데 온데가 없고 반역의 무리들이 날뛰는 세상 거짓 정의와 사이비 진보가 판치는 세상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이어 "새날이 온 줄 알았는데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흔들려 버렸다"라며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요. 선생님의 발자욱과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늘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을 기억한다. 어떤 지식인들보다 어떤 투쟁가들 보다 더 앞에 더 먼저 더 강력하게 장산곶매처럼 세상을 바라보며 한 길을 가신 그리운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들의 발걸음을 보호하소서!"라며 " 우리들에게 다가올 결전의 순간
뜨거운 영감과 뜨거운 사랑으로 모든 이들이 덩실덩실 춤추는 그런 대동세상 만들어 가야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백기완 선생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 여사와 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와 백미담, 백현담, 아들 백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