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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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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작은 우주

김용택 기자 chamstory@hanmail.net 입력 2021/03/25 13:46 수정 2021.03.25 13:48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인터넷에 어렵게 검색했더니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자아정체성(ego identity)에 대한 설명만 보인다. 자아정체성이란 Ego와 Identity를 조합해 만든 합성어일까?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라 미국식이어서 그런가?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인데 생각이나 가치관이 미국식이어서 이해하기가 참 이해하기 어렵다. 학자들은 자아정체성을 ‘자기의 성격이나 취향, 능력과 관심,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 미래관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고 풀이한다.

나를 찾다가 길을 잃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아란 객관적인 ‘내’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왜곡된 자아가 아닐까? 공자는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서“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고, 마흔 살에 현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엔 남의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고, 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쫓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다. 공자와 같은 선각자야 자아를 통달하는 혜안이 있었기에 그렇겠지만 속세를 사는 범인들은 자아가 무엇인지 알고 살아갈까?

나는 몸과 마음으로 형성된 존재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런 질문에 내 몸의 컨디션은 내가 잘 알겠지만, 나의 생각, 가치관, 판단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품 성격에 대한 객관적인 자신을 알고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정의를 한다고 해도 그 답은 자기 기준에서 본 주관적인 자아일 것이다. 가치혼란의 시대를 맞아 학교는 인성교육에 열심이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오래 방황하지 않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오며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에 익숙하지 못하다.

<나 몸에는 우주가 담겨 있어요> 
나는 부모로부터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나는 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이 필요로 한다. 햇빛이나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밥도 먹어야 하고 반찬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를 낳아준 부모님뿐만 아니라 햇빛과 물과 공기, 쌀과 밀, 보리와 같은 곡식이며, 멸치나 고등어와 같은 생선이, 내 몸을 형성하고 있는 나는 작은 우주요, 자연이 내 몸이다. 그런데 나는 나를 존재케 하는 또 다른 나인 자연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가? 자신이 소중하다면서 내의 또 다른 나인 환경을 파괴한 일은 없는가?

<가치내면화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이 먹고 자고… 그래서 살아가는 육체만 가진 존재라면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할 수 있는 정서가 있기에 사람이 사람다운 것이다. 생애교육.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화한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부모와 형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가 자란다. 일찍이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내기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지 않은가? 맹모는 삼천지교를 통해 환경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오늘날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게임을 즐기고 총이나 칼을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며 자란다.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폭력을 가치내면화한다. 오늘날 부모들은 아이들의 정서를 파괴하는 환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지배와 복종의 군사문화를 체화하고, 고기잡이를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가치내면화 한다. 그러면서 인성교육을 하겠다며 학원에 보낸다. 인성은 돈을 내고 학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교육이다. 부모에 감사하는 마음을 효도라고 한다. 친구에 우정을, 스승에 고마움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나의 분신과 같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 그 나를 존재케 하는 생명원(生命源)에 대해 경외감을 갖지 못한다면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명제는 자연의 법칙성에 따른 탄생, 성장, 변화, 발전의 과정을 거치는 생물학적인 ‘내’가 아닌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사고하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 그 나는 무엇인가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생성되는 자기를 느끼고 생각하고 의지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의식인 자의식에서 시작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나를 지켜보는 의식’이다. 자의식이 없는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나는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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