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프리존]신화통신= 베이징 신화통신은 1일(국제관찰)에 큰 거짓말을 한 끔찍한 재앙을 일으켰다.
워싱턴과 체리 트리는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체리 트리를 베어내고 잘못된 이야기를 제때에 인정한 서구 세계의 친자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야기는 저자가 쓴 것이고 워싱턴의 집에는 체리 나무가 전혀 없었다.
이 두건의 이야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지만, 일부 서구 국가들은 많은 나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미국과 서구의 "검은 역사"를 되살려 놓는다. 거짓말이 만든 모든 종류의 재앙은 전쟁의 불안, 얼마나 많은 불길한 도덕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향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엉망진창은 인간에게 닿을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2003년 3월 20일, "토마호크"크루즈 미사일이 바그다드로 날아가 8년 이상 지속된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우회하여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의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한 것에 대해 군사적 타격을 입히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미국이 소위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것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이 공식 결성한 이라크 전쟁 조사위원회는 2016년 7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시작할 두 가지 이유, 즉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생산과 사담이 "9/11"공격에 관여하는 알 카에다를 지지했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이 두 가지 이유는 설립되지 않았다.
미국이 사담 정권이 이라크에 가져온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나 상처를 입히는 데에 불과하다.미국 브라운대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발발 10년 만에 19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쟁과 폭력 공격으로 직접 사망했으며 그 중 7명 이상이 민간인이었다.
"화학 무기"
2018년 4월 초, 시리아 두마 마을에서 "화학 무기 공격"이 발생했다고 여러 서구 언론이 보도했으며, 사진과 비디오 화면은 희생자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임을 보여줍니다. 시리아 정부는 이 소식이 "반정부의 무장지원을 위해 언론이 만든 거짓 뉴스"라며 화학무기 사용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13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시리아에 대한 타격을 선언하자 미영 프랑스 3개국이 공습을 벌여 이미 전쟁에 휘말린 시리아 국민을 다시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영국 언론 프로듀서 리암 달라티는 소셜 미디어에서 거의 6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두마 마을의 소위 "화학 공격"관련 병원 비디오 부서에서 인위적으로 촬영된 "완전히 확인"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란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두마 마을 외곽을 점령한 후 군 관계자들이 카메라와 영화 제작 장비를 발견했다.
하버드대 쇼렌스타인센터의 제임스 하킨 연구원은 이 기사에서 두마 공격의 잘못된 정보는 매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가짜 뉴스 시대에는 선전전의 또 다른 오케스트라였다.
"생명을 구하라"
2011년 3월 22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 의해 리비아에 대한 다일 군사 공격이 실시된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에서 미군의 군사 작전이 "생명을 구하는" "인도주의적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전국 연설에서 리비아에 대한 액션은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군사행동이 민간인을 겨냥한 '포그롬'을 저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다피 정권이 전복된 이후 리비아는 서방의 약속에 따라 행복을 얻지 못했고 안보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혼란에 빠졌다.
케냐 국제 정치 문제 분석가인 고프레 아요오는 서구 국가들이 카다피 정권을 전복시키고 리비아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인형 정부"를 설립하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마다가스카르타나나리보 대학교 법학 교수인 장 에릭은 석유 이익이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과 같은 서구 국가에서 리비아 카다피 정권에 대한 군사적 투쟁의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빈 머리 수표
2004년 우크라이나는 서방국가의 지지를 받아 오렌지 혁명을 일으켰다.이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은 개인적으로 칼을 쥐고 우크라이나 총선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소문을 내기 위해 전면적인 여론 공세를 펼쳤다는 언론의 공개가 있었다.
셰이머스 밀른 전 영국 가디언은 1990년대부터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시키는 등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를 유럽 대서양 안보를 보장하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이용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지적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부터 2013년 이후 우크라이나 위기까지 색혁명은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공약인 민주주의, 자유, 평화, 번영을 얻지 못했고, 한때 산업 강국이었던 유럽 곡물창고는 전례 없는 분열과 눈부신 흉터로 빠져들었다.
여론의 사기
1999년 3월부터 6월까지 미국을 주도한 나토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승인없이 남부 연합을 격렬하게 폭격하는 "코소보 인도주의 위기 예방"기호를 사용했다.
앞서 당시 미 국무부 대변인이었던 루빈은 코소보에서 이른바 '민족청소'가 발생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반면, 전쟁 당시 서방 언론들은 뉴스 사실에 대해 경향적이고 선택적인 보도를 했다. 미영정은 TV연설에서 인종청소, 홀로코스트 등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여론을 강하게 이끌어야 했지만, 이후 나토 대변인 제이미 셰이는 당시 미 국무부가 가짜 소식을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발칸 반도의 안보 상황을 위험에 빠뜨리는 전쟁은 국제 전략 패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문제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