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책(謀策)은 전략을 결정할 때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정책 결정의 기본 사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백전기법’ ‘수전(守戰)’에서 “자신을 아는 자는 지킨다. 자기에게 아직 승리할 이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자는 한층 굳게 지킬 것이고, 적을 이길 수 있는 이치가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군을 출동시켜 공격하면 승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것과 같다.
또 ‘손자병법’ ‘형편’에서는 “이길 수 없으면 지키고, 이길 수 있으면 공격하라”고 했다. 공(攻)‧수(守)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공격은 방어의 전기(轉機)며, 방어는 공격의 수단(手段)이다. ‘약수강공(弱守强攻)’의 실질은 시간과 공간의 운용으로 전기를 창조하고 이용하는 데 있다.
전국 말기의 조나라의 명장 이목(李牧)은 일찍이 안문(雁門) 일대에 오랫동안 주둔하며 흉노족의 침략을 저지해 왔다. 그는 모든, 병사들에게 늘 이런 엄명을 내렸다.
“흉노가 침입한다는 경보를 들으면 즉각 성안으로 들어가 지켜야지, 멋대로 나가 적을 포로로 잡는 자는 군법에 따라 처리한다.”
이목은 무려 10년간을 수비만 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조왕은 이목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문책하여 해임 해버렸다. 그러나 그 뒤부터 조군은 계속 손해만 보았다. 조왕은 하는 수 없이 이목을 다시 기용했다. 이목은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굳게 지키기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았다. 흉노는 여러 차례 공격을 해왔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서한 경제 때 대장 주아부(周亞夫)는 오‧초 7국의 난을 평정하는 전쟁에서 먼저 지킨 다음 나중에 공격하는 공(攻)‧수(守) 결합의 적극적 방어 전략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당시 오‧초 연합군은 7국 중에서도 가장 강한 군대였다. 따라서 오‧초 연합군과 싸워 이기는 것이 곧 7국의 반란을 평정하는 관건이었다. 주아부는 초군은 용맹하고 오군은 날카롭다는 객관적 상황 분석에 근거하여, 양(梁)나라에서 식량을 조달하고 창읍을 굳게 지키면서 적이 지친 틈을 타서 공격한다는 작전 방침을 세웠다.
오와 초가 서쪽의 관중(關中)을 뺏기 위해서는 양나라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에, 한군이 이 지역에서 식량을 충당하며 굳게 지키면 오‧초 연합군의 힘이 소모되어 창읍에서 결전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아부는 창읍에 거점을 잡은 후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출전하지 않고 계속 수비에 치중하면서 결전을 위한 충분한 병력을 보존했다. 그리고 오‧초 연합군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여 일시적으로 그들을 피로와 굶주림에 몰아넣어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결전의 시기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주아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진격하여 오‧초 연합군을 대파했다.
내 쪽의 실력이 총체적으로 보아 적에 못 미칠 때는 전략적 방어로 자신의 힘을 보존하고 키운다. 그리고 적과 나의 역량에 질적인 변화가 발생하면 때를 놓치지 않고 적과 전략적 결전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