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계』 중 제22계의 “약한 적은 포위한다. 그러나 성급하게 멀리까지 추격하는 것은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 뜻을 좀 더 음미해 보면 이렇다. 약소한 적에 대해서는 포위해 들어가면서 섬멸해야 한다. 이리저리 흩어진 얼마 안 되는 적은 그 세력이 보잘 것, 없지만 행동이 자유스럽기 때문에 섣부른 속임수로는 막기 힘들다. 따라서 성급하게 말리 추격하는 것은 불리하다. 사방으로 포위하여 물셀 틈 없는 그물을 쳐서 단숨에 섬멸해야 옳다.
『36계』에서는 이 계략을 ‘착적관문’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문을 닫아걸고 적을 잡아라.’ 이 계략은 적이 도망쳐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또한 도망치는 적을 추적하다가 오히려 내가 유인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관문착적’에서 ‘적(賊)’은 ‘기병(奇兵)’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기병‘은 출입이 일정치 않고 갑자기 기습을 가해 아군을 피로하게 만들 수 있는 병력이나 군대를 말한다. 그런’적’을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게 한 뒤에 추격한다면, 적은 다시 포위되지 않겠다는 의지로 죽을힘을 다해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퇴로를 차단한 다음에 서서히 포위해 들어가야만 틀림없이 제압할 수 있다. 따라서 약소한 적은 포위해 들어가면서 섬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를 포위할 때 반드시 구멍을 남겨둔다’는 ‘위사필궐(圍師必闕)’의 계략과 상호 보완 작용을 한다. ‘관문착적’의 전제는 약소한 적에 대한 조건적 포위와 섬멸이다. 만약 적의 세력이 강하다면 적을 포위‧섬멸하기가 힘들다. 또 때로는 궁지에 몰린 짐승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내 쪽에 유리할 것이 없음으로 다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 36계에서는 이 계략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덧붙이면서 끝에다 “따라서 적을 막다른 궁지로 몰면 안 된다. 놓아주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관문착적‘은 일종의 섬멸 사상이다. 따라서 비단 ’약소한 적을 궁지에 몬다.‘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적과 나의 역량을 비교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적의 주력 병을 섬멸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는 계략이다. 때로는 함정을 파놓고 적을 그 안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자치통감’과 ‘사기’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기원전 260년, 진과 조 사이에 벌어졌던 장평 전투에서 진의 장수 백기(白起)는 조괄(趙括)이 종이 위에서만 용병을 논한다는 약점을 파악하고는, 함정을 파놓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는 한편 2만 5천의 날랜 병사들로 하여 조군의 후방을 막아 퇴로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별도로 기병 5천 명을 조군 진영과의 사이에 두고 조군의 출격 부대와 진영 수비대를 각각 포위했다. 그런 다음 일찌감치 준비해 놓은 경 장비 부대로 계속 초군을 공격하면서 포위망을 좁혀 들어갔다. 조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공세에서 수비태세로 작전을 바꾸었다.
진의 왕은 전국 15세 이상 남자의 장정들에 대해 총동원령을 내려 참전시켰다. 그리고 ‘포위는 하되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위이불타(圍而不打)’의 전략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식량이 떨어지고 구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조의 병사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등 극한 상황까지 치닫다가 결국은 무장 해제를 당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백기는 40만에 달하는 조군 포로들을 생매장시켰다.
‘관문착적’의 전략사상을 운용하려면 전체적인 국면을 면밀히 살펴 ‘관문’의 시기와 지점을 정확하게 선택해야 하며, 형세에 따라 계략을 달리 구사하고 정세에 따라 변통(變通)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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