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30대, 0선의 젊은 정치인이 11일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현상’이란 말까지 들으며 압도적 차이로 당선됐다. 초반 예상외 선전으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바로 ‘대세’가 됐고, 가장 오래된 보수정당에서 최연소 대표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윤석열 X파일’ 공방으로 가려졌지만, 이 대표의 성적은 무난함을 넘어 기대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2030세대의 국민의힘 입당이 많아지고, 이 대표가 제안한 공개오디션을 통한 대변인 ‘토론배틀’은 500여 명이 지원, 치열한 경쟁을 통해 16명이 본선에 오르는 등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초반에 저지르기 쉬운 말실수나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당 안팍의 대선후보 관리 측면에서 잡음이나 혼선이 없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의도 주변의 평가에 따르면 젊은 나이에 비해 3선급 중진 의원 이상의 노련함을 보인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막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대표경선 후보시절 광주를 찾아서 “앞으로 5·18(광주민주화항쟁)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당 대표로 25일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만나 앞으로 당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준석이라는 젊은 정치인 등장으로 국민의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2030세대의 지지와 함께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관계 등 쌍끌이 효과도 있지만, 입당하지 않은 윤 전 총장에게 치우치지 않고 당내 후보를 적절히 활용하는 등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쥐고 나가는 전략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현재까지 이준석 대표는 ‘꽃길’만 걷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가 계속 될 것인가?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젊은 정치인이라는 측면에서 ‘세대교체’라는 측면이 강조됐다. 2016년 총선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4연속 패배를 당했고, 지난 총선에서는 100석 미만으로 이른바 영남자민련(김종필이 1995년 창당 2006년 막내린 충청권 기반의 보수정당)‘으로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다 지난 4·7 서울부산 재보궐선거는 기사회생이었다. 이 과정에서 20-30세대, 특히 이대남(20대 남자)의 아이콘이 된 이준석 효과는 충격이었다.
이같은 효과는 대표 선거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대표는 당심에서 나경원 후보에 밀렸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압승하는 바람에 1위를 차지, 민심에서 이겨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불과 1년 전, 2019년 2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후보는 당원 투표 55.3%, 여론조사 37.7%, 오세훈 후보는 당원 투표 22.9%, 여론조사 50.2%를 차지, 오세훈 후보가 민심에서 앞섰지만, 당심을 얻은 황교안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민심을 따라야 승리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 대표가 현재까지는 여론의 지지, 혹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어쩔 수 없이 변화해야 하는 흐름을 타고 주도권을 쥘 수가 있다. 언제까지일까?
사실 이 대표가 등장해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후보가 드러나는 9월말 경이면 당내 모든 권한은 대선후보 중심으로 재편된다. 당 대표의 권한과 역할은 줄어들고 그야말로 도우미,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표에겐 3-4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당장 유력 대선후보지만 ‘X파일’로 휘청거리는 윤 전 총장과 당내 후보들간의 조정이 1차시험대 일 것이다. 대선 경험이 있고 노련한 홍준표 의원의 복당으로 윤 전 총장을 포함 후보간 경쟁은 더 치열해 질 것이며, 판은 더 어지러울 것이다. 세력도 경험도 없는 이 대표가 조정에 나설 수 있을까?
이 대표의 역할이 한정적이란 것은 바로 자신을 도와줄 원군이나 우호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원하는 젊은 정치를 원하면 그만한 젊은 정치인들이 있어야 하는데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서 30대 의원은 드물고, 김재섭·천하람 등 20~30대 원외 당협위원장은 힘이 더더욱 없다.
이 대표의 진짜 시험대는 따로 있다.
여기서 국민의힘 내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전신은 1961년 5.16 이후 박정희의 공화당까지 이어진다. 당명을 수없이 바꿔도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까지 지역적으로 영남을 기반으로 하고 보수언론과 재벌기업, 그리고 검찰권력까지 장악, 60여 년 권력을 누린 집단이다. 권-언-재 삼각동맹을 기반으로 영남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는 ‘막말’의 배경이 된 것이다. 유럽의 일반정당처럼 청소년이 가입, 활동, 순차적으로 검증되고 시의원에서 국회의원, 각료, 당수, 총리를 거치는 과정이 없다. 이 대표가 2011년 박근혜에 의해 발탁된 ‘박근혜 키즈’는 이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유럽처럼 30대 당수, 40대 총리는 국민의힘에서 꿈도 못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표는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이다. ‘공정한 경쟁’을 우선으로 상식과 합리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이 2030세대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 대표의 ‘공정한 경쟁’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통할 수 있는 균형잡힌 경쟁일까? 이점에 대해 이 대표 등장 직후 온라인매체 ‘피렌체의 식탁’에서 ‘이준석 현상’ 긴급토론회에 나온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의 발언은 새겨 들을만 하다.
강 대표는 “그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의 다른 말은 ‘경쟁해야 공정하다’라고 본다”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조국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 공정은 그동안 강자를 향한 칼로 활용됐다. 이준석 대표가 꺼낸 공정이 당내 기득권으로 향할 때는 ‘강자를 향하는 공정’으로 이야기되지만 여성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에게 공정을 꺼낼 때는 칼날이 약자를 향한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기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이 질문에 이 대표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이준석의 공정이 진짜 공정인 것인지, 아니면 불공정과 불평등을 은폐하는 공정인지 분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 “이준석, 2030욕망과 불만을 ‘공정’ 레토릭으로 발화” 2021. 6. 17 기사에서 인용)
이 대표의 정치실험은 60여년 변하지 않은 강고한 국민의힘 내부구조를 변화시킬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최우선 과제는 유력 대선후보의 선출이지만, 그 과정이나 이후에 이 대표의 소신과 공약이 통할 수 있는지는, 사실 대선후보 선출보다 더 유의미한 일이다. 국민의힘 머리 보다는 몸통이 바뀌어야 한국사회에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의 정치실험, 더 유심히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