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 및 홍보미디어위원장 등 선대위 보직에서 사퇴했다. 당대표직은 유지했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교체 같은 비상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당대표가 당연직 상임선대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준석 자진사퇴 ‘지진해일’이 국민의힘을 뒤흔들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21일 오후 4시 예고대로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문제의 발단은 20일 선대위 비공개회의에서 이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간의 설전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자신을 흔드는 언론 보도를 지적하며 조수진 공보단장에게 "윤핵관(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발 일부 언론 보도를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조 단장은 "내가 왜 그쪽의 명령을 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대표는 "내가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 아니냐"고 말했고, 조 단장은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고 맞받았다. 이에 이 위원장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선대위가 무슨 필요하냐"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파행을 맞았다. 이후 조 단장이 ‘사과’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한 표현으로 했지만, 이날 오후 조 단장이 “이준석 대표를 탄핵해야 한다”라는 ‘가로세로연구소’ 동영상을 기자들에게 뿌린 것이 확인돼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대표는 조 단장의 사과여부에 상관없이 “거취를 표명하라”고 압박했지만, 사과도 사퇴도 없었다.
0선의 30대이지만 당 대표와 비례 초선의원인 조 단장과의 무게감은 확연히 다르다. 당 대표가 초선 의원하고 싸우면 당 대표 이미지만 손상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당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유는 단 하나, 조 단장이 "나는 (윤석열)후보 말만 듣는다"며 당 대표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선대위 비공개회의 안건은 윤석열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씨 ‘허위 경력, 이력’을 둘러싼 대처에 있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이 대표는 윤 후보 및 김건희씨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사과로 수습해야 할 것을 제시했지만, 윤 후보는 ‘사실관계가 우선’이라며 ‘사과’에 미온적이었다. 조 단장은 바로 이런 후보의 뜻을 전하면서 “현역 의원들이 적극적인 활동이 없어 윤 후보가 섭섭해 한다”는 발언까지 전했다. 이 대표가 발끈한 것은 바로 ‘윤핵관’의 재등장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선대위 출범 전 ‘윤핵관’에 둘러싸인 윤석열 후보로 인해 지방 순회라는 명분으로 잠행을 하면서 벼랑끝 승부수를 날렸다. 이 대표의 요구는 단순했다.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원탑’ 체계구성과 ‘윤핵관’의 제거였다. 대외적인 당내 화합, 이 대표의 2030세대 소구력으로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11월 3일 울산회동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중심, 윤핵관 배제로 이 대표의 승리였고, 윤 후보는 이 대표를 가리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정치인”으로 한껏 치켜올렸다. 이런 자신감으로 이 대표는 “매머드(코끼리)의 털을 깍으니 악취가 사라졌다”고 승리를 자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승리는 18일을 가지 못했다.
이 대표의 전격 사퇴는 결국 ‘윤핵관’의 건재함과 필연적으로 당내 중진(이 대표 표현으로는 ‘하이에나’)들에게 휘둘리는 윤 후보, 그리고 ‘오합지왕’으로 불리는 덩치만 큰 매머드 선대위로서는 대선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의 영입 이후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영입은 이 대표의 대선승리 공식인 ‘세대포위론(2030세대와 전통적 지지층인 60대의 결합)에 대한 ’거부‘에 다름아니다.
이 대표가 윤 후보와 결별한 가장 큰 이유는 신뢰의 문제였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입당할 때부터 ‘당 대표 패싱’ 등 여러차례 갈등설이 불거져도 “자신과 윤 후보와의 관계는 견고하며, 주변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을 내내 강조했다. 윤 후보와는 핫라인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자신감이자, 윤 후보에게 자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20일 선대위에서 윤 후보를 방패로 내세운 조 단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윤 후보는 "(선대위를) 어떻게 군사작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하느냐.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며 한 발 뺀 모습을 보였다. 갈등이 본격화 되자 윤 후보는 이날 조 단장과 통화에서 이 대표에게 사과할 것을 직접 권유하며 봉합을 시도했지, 김종인-이준석 체제를 보호하거나 인정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후보의 시간’, 윤 후보의 신뢰와 믿음이 없는 당 대표는 허울뿐이다. 이 대표의 사퇴는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이제 이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물론 상임선대위원장과 이 대표가 자원한 홍보미디어위원장 등 선대위 보직을 사퇴하는 것이지 당 대표를 사퇴한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서 해야 할 당무는 성실하게 하겠다"며 "물론 울산에서의 합의대로 당 관련 사무에 있어서 후보가 요청하는 사안이 있다면 협조하겠다"고 말했지만 대선국면에서 당의 중심은 후보와 선대위이지 당 대표가 아니다. 이 대표는 의례적인 ‘백의종군’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국외자(局外者)로 팔짱끼고 관전모드로 있겠다는 표시이다.
이 대표로서는 울산회동 이전 이미 한차례 지방 잠행을 통해 윤 후보측과 갈등국면을 야기했고, 극적으로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는 없다. 더 이상 감동도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선거운동에 나설 가능성은 윤 후보 요청이 아닌 김종인 총괄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선대위를 ‘슬림화’ 해서 전면개편 할 경우이다. 이 경우 윤 후보를 돕는 것이 아닌 김종인 위원장을 돕는 차원일 것이다. 다만 윤 후보 지지율이 오르면 이 대표를 찾지 않을 것이고, 윤 후보 지지율이 급락할 경우 지는 판에 들어갈 일이 없을 것이니 대선국면에서 이 대표의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대표의 사퇴는 잠시나마 김종인 총괄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대위 지휘 체계 개편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를) 2주 가까이 관찰해보니 전혀 효율이 나오지 않는 비대한 조직”이라며 자신의 친위 조직인 총괄상황본부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 덩치만 큰 항공모함 보다는 이른바 기동헬기 같은 기동력으로 심도 있게 선대위를 끌고 가려 하지만, 윤핵관들이 건재한 상황에서 이같은 시도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다음날, 당대표 선거 전 공약한대로 윤 후보에게 이른바 금낭묘계(錦囊妙計)라는 ‘비단주머니’를 선물했다.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는 <삼국지>에 나오는 전략가 제갈공명의 고사에 나온 말로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묘안이 담긴 주머니를 의미한다. 윤 후보에 제기될 의혹이나 문제들에 대해 이 대표 나름대로 대비책 등의 선거 전략을 마련해놨다는 의미였다. 그런 ‘비단주머니’도 이제 무용지물이 됐다. 배우자 김건희씨의 수많은 ‘허위 경력’ 조차 명쾌하고 빠른 ‘사과’를 하지않는 윤 후보에게 어떠한 ‘비단주머니’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 후보 본인, 부인 김건희씨, 장모 등 더 쎈 ‘본부장 리스크’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은 이 대표는 본인을 위한 ‘비단주머니’가 있기나 한 가이다.
이 대표가 가장 자신있어 한 것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며, 이는 지난 4·7재보궐 선거에서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2030세대의 지지를 통해 세대결합론으로 대선에 임해야 필승구도라고 강조해 왔다. 이 대표는 사퇴 이후 페이스북에 "세대결합론이 사실상 무산됐으니 새로운 대전략을 누군가 구상하고 그에 따라 선거 전략을 준비하면 될 것"이라며 사실상 ‘(이준석없이)잘 해 보라’는 식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 대표의 ‘세대결합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2030 세대의 지지는 엄밀히 말하면 일부 ‘이대남(이십대 남자)’의 보수정당 지지였고, 이는 당시 민주당 출신 서울 부산시장의 성추문과 LH 직원들의 조직적 부동산 투기, 민주당 심판 등이 맞물린 현상이었지 지속적인 현상은 아니다. 이는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대남의 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그만큼의 ‘이대녀의 거부’도 나오는 법, 윤 후보측이 페미니스트 전사로 알려진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영입도 선거국면에서 ‘이대남’ 못지않게 ‘이대녀’ 지지라는 측면에서 나온 선거전략일 뿐이다.
이 대표의 2030세대 친화력과 동원력, 좁게 말하면 ‘이대남 지지’라는 것도 실체도 없고 허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결국은 이준석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 아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며, 대선후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아직도 ‘이대남 지지’를 자신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다.
당분간 이 대표가 윤 후보를 위해 준비한 ‘비단주머니’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이 대표 자신을 위한 ‘비단주머니’가 궁금하다. 2030세대가 아직도 자신을 지지한다는 착각속에 있는 이 대표의 ‘비단주머니’는 언제 나올까? 조금 더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