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을 견제하면서 오른쪽을 친다.
고고학 발굴에 의해 죽간(竹簡)에 기록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발견됨으로써 손자와 손빈이라는 두 인물의 실체는 물론 두 병서의 실존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손빈병법’ ‘객주인분(客主人分)’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군사에서 상대의 의지(투지)를 뺏으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왼쪽을 견제하면서 오른쪽을 쳐 패배시키면 견제를 당하는 왼쪽에서는 구원에 나설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군대가 패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피하려 해도 소용이 없고, 가까이 있어도 수가 적어 활용하기에 모자라고, 멀리 있는 것은 엉성하여 쓸 수 없으니‧‧‧‧‧‧.
‘왼쪽을 견제하면서 오른쪽을 친다’는 ‘안좌질우’에서 ‘안(按)’은 억제‧견제를 가리키며, ‘질(抶)’은 타격과 같은 뜻이다. 이 계략은 적의 왼쪽 날개를 견제하면서 오른쪽 날개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오른쪽 날개의 적을 격파하면 견제를 당하고 있는 왼쪽 날개는 구원할 방도가 없어진다.
‘자치통감’ ‘위기(魏紀.6)에 기록된 238년의 일을 보자.
위나라 장수 사마의(司馬懿)는 요동지방에서 연왕(燕王)으로 자처하고 있는 강력한 지방세력 공손연(公孫淵)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요수(遼水-지금의 요녕성 요하)를 건너 진영과 보루를 구축한 다음, 요수(遼隧.-지금의 요녕성 해성 서쪽 60리)를 지키고 있는 적과 대치했다. 공손연은 수만 명을 요수에 주둔시키고 무려 20여 리에 이르는 보루를 튼튼히 쌓아놓고 있었다.
사마의는 견고한 방어망을 가진 요수를 공격하지 않고 견제만 하게 해놓고는, 곧장 적의 후방인 양평(襄平.-지금의 요녕성 요양 북쪽 70리)으로 전진했다. 사마의의 부장들이 왜 요수를 공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마의는 적이 튼튼한 보루를 쌓고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를 끌어드리려는 속셈이므로 진군했다가는 계략에 걸려들고 말 것이라고 했다. 사마의는 이곳에 주력군이 배치되어 있느니 만치 양평에는 분명 빈틈이 있을 것이라 보고 적의 예봉을 피해 곧장 반란군의 소굴인 양평으로 쳐들어갔다. 공손연은 황급히 구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사마의는 그 틈에 적의 주력을 섬멸하기 위한 창조적인 조건을 마련했다. 과연 전세는 사마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공기필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