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정치참여가 예측된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전격 사퇴했다. 여권은 즉각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며 ‘최재형 때리기’에 나섰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감사원장, 그리고 잠재적으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까지 야권후보군으로 몰려가자 난감한 표정이다.
대통령 선거가 9개월도 남지 않은 현재 문재인 정부 하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는 윤 전 총장이다. 최 원장도 정치에 나서기도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적합도 5~6위권(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이름을 올려 관심을 받았다. 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였던 김동연 전 부총리도 여권 아닌 야권쪽으로 많이 기운 상태이다.
문 정부 초기부터 중용받아 요직에 임명된 사람들이 야권을 택하자 여권은 ‘배신자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능력을 인정해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를 줬는데, 그것을 발판삼아 반대편에 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 임명권자에 반하는 정치적 선택이 ‘배신자’ 소리를 들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 정부 들어서 요직에 발탁되어 임무를 수행할 때는 국정철학이 자신과 맞는지, 임명권자의 리더쉽이나 가치관이 자신의 가치관과 부합되는지 스스로 검증을 했을 것이다. 그런 검증을 하고서 직무를 받아들이고 수행했다가 상황이 바뀌어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최재형, 윤석열과 앙시앙 레짐(구체제)'이란 제목의 글은 시사점이 많다.
김 의원은 28일 사퇴한 최 원장을 향해 "구(舊)주류의 총아", "전형적인 태극기부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감사원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 원장은) 애초 문재인 정부와 결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며 "'요새 이런 이야기가 들려~' 하면서 최 원장이 먼저 정치 관련 얘기를 꺼내고는 했는데, 전형적인 '태극기부대'의 논리였다고 한다. 일본과 무역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하고 이러다가는 나라 망한다'는 식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또 "경기고, 서울대 법대, 판사 경력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 원장은 우리 사회 '구주류의 총아'가 될 자격이 차고 넘친다"며 "친인척들은 그가 생각의 성벽을 견고하게 쌓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고, 월성 1호기에 대한 '정치적 감사'는 이런 정서와 배경에서 싹텄으리라"고 주장했다.
권력기관 수장들이 잇달아 직을 던지고 야권으로 몰려가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 실패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정색할 필요까지는 없다"며 수긍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꾸려고 개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반동이란 설명이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세력이 검찰과 원전 마피아다. 윤석열과 최재형은 이 세력들을 대표한다"며 "두 사람의 도전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개혁세력과 저항세력이 맞서고 충돌하면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건 역사적 맥락을 개인의 취향으로 떨어뜨리는 오류를 낳는다"며 "문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윤석열의 난'도 '최재형의 난'도 없었을 것이다. 또 개혁의 기치를 내걸면서 우리 편만 골라 썼다면 진즉에 레임덕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폈다.
김 의원의 진단과 분석에 다 동의하진 않아도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최 원장 같은 부류의 사람이 바로 ‘구주류의 총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기고, 서울대 법대, 판사 경력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해온 (구)주류 세력인 것이다. 여기에 영남, 조중동, 재벌이 삼각동맹으로 기득권을 누리면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그들이 바로 최 원장의 친인척들이다.
구주류에게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저자세고, 중국에 말한마디 못하고, 한미동맹을 포기하고, 일본을 자극해서 한국경제를 어렵게 하는 아마추어에 불과할 뿐이다. 얼마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에 참가한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이란 보수 단체 대표를 맡으면서 주말마다 회원들과 함께 서울 도심에서 현 정권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하는 태극기파로 알려졌다. 미국 MIT대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적인 기업을 이끈 민 전 대표이사 같은 사람이 태극기부대로 활동하고 문 정부를 비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주류의 실체이다.
윤 전 총장이나 최 원장 같은 사람을 보면 2015년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내부자들’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는 검사 출신 유력 대권후보인 정치인과 언론, 재벌들의 야합과 추잡한 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언론에서 검사출신 스타정치인을 만들고, 재벌이 뒷돈과 향락을 제공하면서 온갖 궂은 일은 정치깡패에게 맡기고 그들만의 세상을 꿈꾼다. 이 음모는 정치깡패의 복수와 경찰출신으로 물만 먹다가 검사가 돼도 한직에서만 맴도는 정의로운 검사에게 분쇄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금기의 영역인 ‘검사정치인-언론-재벌’의 권력스캔들을 다루는 대표적인 영화로 평가받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이나 ‘장자연 사건’, ‘성완종 리스트’ 등이 터질 때 마다 영화는 소환되었는데, 영화가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아닌 비판까지 받아야 했다.
윤 전 총장이나 최 원장 등은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내부자들’이다. 지금까지 카르텔로 형성된 권력과 언론, 재벌 삼각동맹의 우산 아래 그들만의 세상을 꿈꿔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정치참여는 반문재인으로 주목을 받고, ‘내부자들’ 그룹에서의 후원으로 연결되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명확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기회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고, 능력있는 인사의 발탁이었다. 그동안 그 평등과 공정, 정의를 발목잡은 세력들은 누구인가?
바야흐로 배반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