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재윤 전 의원이 29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15층짜리 빌딩 아래에서 김재윤 전 의원이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1965년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한 김재윤 전 의원은 90년대 한국외대·중앙대 강사, 경인여대·세명대·조선대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고 2001년부터 탐라대학교 출판미디어학과 교수로 재임했다.
김재윤 전 의원은 탐라대 교수로 재임하던 지난 200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인기 코너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바 있다. 당시 김재윤 전 의원은 '책 전도사'로 불리며 진행자였던 유재석·김용만 씨와 함께 2년동안 전국적인 독서열풍을 일으켜 주목을 받았다.
김재윤 전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귀포·남제주 선거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18·19대 총선(서귀포시)에서도 연이어 당선됐다. 줄곧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김재윤 전 의원은 지난 2014년 8월 김민성 당시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이하 서종예) 이사장으로부터 '입법 로비' 대가로 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재윤 전 의원은 당시 옥중에서 한 달 넘게 단식투쟁을 하는 등 자신의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했으나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김재윤 전 의원은 항소심 재판에서 자신의 모친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자신의 결백을 강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까지 유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당시 항소심 담당판사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다.
김재윤 전 의원은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수감생활을 하다 2018년 8월 만기 출소했다.
김재윤 전 의원과 신계륜·신학용 전 의원이 기소됐던 문제의 '입법 로비' 사건은 지난해 10월 KBS '시사직격'에서 재조명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이 이들 세 의원을 수사하는 과정을 보면 김민성 전 이사장의 진술 외엔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다. 게다가 김민성 전 이상의 진술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며 신빙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고,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여기에 검찰이 김민성 전 이사장과 소위 '형량 거래'를 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도 있다. 교비 횡령 혐의로 기소됐던 김민성 전 이사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재판을 마쳤으며, '세 의원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했음에도 뇌물공여죄 혐의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교비 횡령 혐의를 봐줄테니, 금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하라'는 검찰의 협박·회유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해당 건은 박근혜 정권 당시 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청와대의 하명수사라는 의혹이 매우 짙다. 김영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작성한 비망록(업무수첩)에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는데, 검찰이 당시 박근혜 청와대에 김재윤 전 의원 등에 대한 수사내용을 수시로 보고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다.
김영한 비망록에 따르면, 김민성 전 이사장이 진술서를 작성한 바로 다음 날인 2014년 7월 8일 청와대에는 야당 의원에 대한 비위가 확인됨으로써 (야당에 대한)경고효과가 일어났다고 보고된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이 검찰로부터 수시로 수사내용을 보고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그해 8월 5일에는 이들 의원 3인에 대한 검찰 소환일정까지 보고됐으며, 역시 비망록에 적힌 날짜대로 세 의원이 소환 통보를 받는다.
특히 김재윤 전 의원이 그동안 억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부분도 있다. 김재윤 전 의원이 '시사직격'에서 공개했던 녹취록에 따르면, 김민성 전 이사장은 출소한 김재윤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저로 인해 큰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하다" "짜여진 틀에서 저로 인해 피해를 보신 분들이 (감옥)안에 계셨다"고 한다.
김재윤 전 의원은 출소 이후 명예회복과 정치재개 등을 다짐했고, 올해 초엔 '열린시학' 2020 겨울호에서 제 10회 한국예술작가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