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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이재명이 던진 ‘점령군’, 걸려든 윤석열..
정치

[데스크의 눈] 이재명이 던진 ‘점령군’, 걸려든 윤석열

이창은 기자 editor@newsfreezone.co.kr 입력 2021/07/05 03:08 수정 2021.07.05 03:15
‘점령군’ 논란보다 국제정세 판단이 더 중요, 윤 전 총장은 퇴행적 인식 드러내

[뉴스프리존]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군 점령군’ 표현이 대선국면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대선출마 기자회견 직후 고향인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친일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자신의 ‘점령군’ 발언에 대해 야권 대선후보와 보수언론에서 논란이 되자 이 지사 캠프 대변인단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대변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역사인식 부재'라고 마타도어를 하기 전에 본인들의 '역사지식 부재'부터 채우는 것은 어떨지 제안한다"며, 해당 발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이라며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다. 이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점령군 주한미군을 몰아낼 것이냐는 황당무계한 마타도어마저 나온다"며 "주한미군은 정통성 있는 합법 정부인 이승만 정부와 미국이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군대다. 일본의 항복에 의해 주둔한 미군정의 군대와는 명백히 다르다"고 했다.

지금 여든 야든 내년 3월의 대권을 위해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 되며 가장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지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하고 성역인 미국, 미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했다. 정치 초년생의 실수인가? 아니면 고도로 계산된 전략인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의 '점령군' 표현이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인에게 해방이후 일본 점령의 연장으로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당연히 점령군으로 온 것이다. 그러다 1948년 신정부 수립 후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미국과 미군에 대한 인식을 모두 바꿔 놓았다. 한국전쟁으로 친미적인 이승만 정권은 1950년 7월 14일자로 작전지휘의 일원화와 효율적인 전쟁지도를 위해 단 한줄로  국군의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했다.

한국전쟁에 유엔(UN)을 통해 다국적군이 참전하자 이승만 정권은 1950년 9월 18일 국무회의를 통해 전세계에 유일하게 유엔창립일 10월 24일과 미국(서양)의 풍속인 성탄절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촌극을 벌였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경력을 지우기 위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면서 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월남파병까지 동원한다. 이후 12.12 쿠데타. 광주민주화항쟁 무력진압 등으로 정통성 없던 전두환 정권에서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성역이었고, (주한)미군은 금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승만 이래 미국은 마치 조선시대 임진왜란시 명나라가 조선파병으로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 거의 망하게 된 걸 구해준 은혜”라는 뜻의 ‘재조지은(再造之恩)'과 동격이었다. 미국이라는 존재는 정통성없는 정권과 그 부역자들에게는 친미(親美)가 아닌 숭미(崇美)였다.

정치인에게 ‘설화’는 치명상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잘 아는 이 지사가 ‘점령군’ 표현을 썼다. 물론 해방공간에서의 ‘점령군’이지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지사의 ‘점령군’ 발언 직전에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먼저 발언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1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경기도 양주 백석고 학생들에게 13분 분량의 영상을 보냈다. 영상에서 김 회장은 광복 이후 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모여 만든 광복회는 가장 권위있는 단체이고, 해방공간에 대한 광복회장의 발언은 무게감이 남달라도 ‘점령군’ 표현은 역시 반발을 불렀다. 예전 같으면 보수정당과 연결된 재벌기업의 후원을 받는 정체불명의 단체들이 항의규탄 집회가 열리고, 보수언론은 이를 받아 쓰고, 보수정당은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이용 막말을 하는 구조였다. 흔히 하는 말로 “세상 시끄럽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 강도는 아주 약했다. 

김 회장의 발언에 야권도 보수언론도 ‘망언’이라는 비난 외에 적극 나서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지사의 ‘점령군’ 표현은 의도된, 교묘한 전략이라고 봐야한다. 

이 지사의 발언 후 유승민 전 의원은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하태경 의원이나 원희룡 지사 또한 차이가 별로없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모의 법정구속으로 입지가 좁아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 지사를 공격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은 4일 페이스북에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께서 큰 충격을 받고 계시다”라며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 세력의 차기 유력 후보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 온 국민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6·25 전쟁 당시 희생된 수만 명의 미군과 UN군은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인가”라며 “죽고 다친 수많은 국군장병과 일반 국민들은 친일파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웠나”라고 꼬집어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며 “이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 지사를 한데 묶어 공격했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은 역사적 배경이나 미군에 대한 역할에서 이 지사의 ‘점령군’ 발언과 맥락이 다르다. 해방직후 점령군으로 온 미군과 한국전쟁 이후 한미간 상호방위조약 등 협정으로 주둔한 주한미군의 성격은 엄연히 다름에도 6·25전쟁 운운하며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싸잡아서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또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이 글을 올린 뒤 "해방 직후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한을 각각 '점령'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윤 전 총장을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1945년 9월 7일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 포고령 1호. '본관이 지휘하는 전승국은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고 썼다면서 "국민의힘 및 유력 대선 후보 윤석열씨, 그리고 수구 언론은 역사적 사실을 '색깔' 공세의 소재로 써 먹는다"며 "퇴행적"이라고 일갈했다.

이쯤되면 이 지사의 ‘점령군’ 표현은 의도된 도발이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 29일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열린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한일관계를 개선할 방안”에 대한 일본 NHK 기자의 질문에 “이념편향의 죽창가 때문에 한일관계가 엉망이 됐다”는 발언으로 점수를 잃었다. 일본의 보수 자민당 정권이 과거 일제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거부,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엉망이 됐다. 경제보복에도 굴하지 않고 기술자립을 이뤄 높은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그야말로 ‘이념편향’적인 낮은 평가는 그 자체로 윤 전 총장의 한일관계의 특수성 무지, 저급한 역사인식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윤 전 총장은 한국과 미국에 관한 국제정세의 변화, 상호 대등한 동맹관계의 인식은 없이, 6·25전쟁 운운 하며 60-70년대 인식에서 멈춘 것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었다. 윤 전 총장과 그 주변 사람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말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기 위해 동맹국에 엄청난 주둔비를 요구해서 국제적으로 큰 소동을 일으킨 사실조차 모를 것 같다. 한국에 대해서는 매해 10억달러 보다 5배나 인상된 50억 달러 이상을 요구, 엄청난 반감을 초래한 사실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 지사의 발언은 그러한 국민정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지금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여권과 야권의 선두주자로 매 여론조사마다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다. 지지율에 차이는 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은 20-30-40대는 이 지사 유리, 60-70대는 윤 전 총장 유리, 50대는 반반이라고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아무리 용을 써도 20-30대는 여권 지지가 높다고 한다.

국제정세와 세계경제에 밝은 글로벌 세대인 20-30-40대와 함께 갈려는 이 지사, ‘반공과 친미’ 등 과거에 머문 60-70대에 의존하는 윤 전 총장의 대결구도라면 결과는 뻔하다. 

정치적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도 ‘점령군’이란 표현을 던진 이 지사에게 윤 전 총장이 딱 걸려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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