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에 이어 통일부 마저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의 대선공약으로 촉발된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당내에서조차 별 호응을 얻지 못하자 “통일부도 제 역할을 못 하는 부처라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여권은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 주장에 격하게 반응하면서도, 의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애초 유승민 전 의원이 여가부 폐지 주장에 하태경 의원이 동조하고, 이 대표까지 호응하면서 국민의힘이 선점하는 ‘아젠다’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에 대해 조수진 의원, 윤희숙 의원 등 당내 여성의원들부터 반대하고 나오고, ‘젠더 이슈’에 대해 여권은 물론 여론도 싸늘해지면서 슬그머니 후퇴한 전략이다. 무엇보다 당장 ‘이대남’(이십대 남성들)의 (일부) 지지는 받아도 그 반대이상의 ‘이대녀(이십대 여성들)’ 반발을 의식, 슬그머니 폐기될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통일부 폐지까지 전선을 넓혔다. ‘여가부 폐지’ 실착을 회피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남북교착 국면을 흔들면서 담론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9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ㆍ통일 업무가 분리된 건 비효율적"이라며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꺼냈다. 그는 10일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를 둔다고 젠더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통일부 둔다고 통일에 특별히 다가가지도 않는다"고 재차 통일부 '무용론'을 강조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향해서도 "'필요한 부처'라고 생각하신다면 장관이 제대로 일을 안하고 있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 대표가 통일부 폐지의 가장 큰 이유로 ‘제 역할을 못 하는 부처’로 콕 찍은 것은 문 정부 대북정책 자체를 부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에 대해 이 대표의 언급에 최대한 반응을 자제했던 이인영 장관은 10일 "통일부를 폐지하라는 부족한 역사의식과 사회인식에 대한 과시를 멈추길 바란다"며 역공에 나섰다.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 발언에 대해 주무부처인 이 장관과의 설전과는 별도로 여권 후보들은 일제히 ‘반통일적인 사고’라며 비판에 나섰다.
이재명 캠프 최지은 국제대변인은 "통일부 폐지 주장은 일부 반통일 정서를 자극해 국민을 갈라치려는 것"이라며 "오히려 통일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낙연 후보도 페이스북에서 "제1야당은 어리석고 무책임한 주장을 철회하라"며 "통일부 폐지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의문을 야기하고 남북 관계와 대외관계에 불편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 대표를 '걸핏하면 폐지론자'로 지칭하며 "아빠 친구 유승민 전 의원의 여가부 폐지론에 편승했다가 스텝이 꼬이자 내친김에 오기로 통일부 폐지까지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가장 강력한 비판은 여권 아닌 국민의힘 내부, 그것도 중진에게서 나왔다.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은 수학이 아니다"며 "쓸데없이 반(反)통일세력의 오명을 뒤집어 쓸 필요도 없다. 통일부는 존치돼야 한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MB정부 초기 일부 인사가 통일부 업무를 '인수분해' 해보니 각 부처에 다 나눠줄 수 있고 따라서 통일부는 폐지가 마땅하다는 말을 해서 경악을 했는데 다시 통일부 무용론이 나오니 당혹스럽다"며 "이 정부 통일부가 한심한 일만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없애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집권해서 제대로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권 의원의 지적은 한마디로 “반(反)통일세력의 오명을 뒤집어 쓸 필요도 없다”라는 것이다. 당 중진의 무게감 있는 발언, 무엇보다 ‘반(反)통일세력의 오명’이라는 지적은 이 대표의 발언을 직격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계속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를 포기안하는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은 앞으로 보수 진영 내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주요하게 다뤄질 과제일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즉, 보수정당 정체성의 핵심인 '작은정부' 논쟁으로 이끌어가면서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범여권의 비판 아닌 당내에서조차 반대와 비판으로 동력을 잃은 상태이다.
한편으로 이 대표가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를 들고 나온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범야권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처가리스크’가 극대화 되는 상황에서,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부인 김건희씨 학위논문 부정의혹도 의혹이지만 논문제목에 ‘Member Yuji’라는 기상천외의 제목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의 관심을 돌려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가장 적절하게 비판했다. 고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둘러싼 의혹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진다. 이슈를 이슈로 덮으려는 수"라며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의 배경을 비판했다.
이 대표는 당의 얼굴이자 최고 전략가로 대선을 진두지휘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무게감이 다르다. 그럼에도 설익은 여가부 폐지에 동조하고 통일부까지 전선을 확대했다가 여의치 않자 ‘작은정부’론으로 선회했지만 진짜 의도는 범여권, 특히 이재명 후보에 대한 견제가 주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범여권 지지율 1위인 이재명 지사의 강점은 행정의 달인, 무서운 추진력이다. 코로나19 방역초기 확진자가 폭증한 대구에서 대구시장과 대비되는 행보로 주목받고, 경기도 하천과 계곡의 불법점유 시설을 일거에 철거해 명성을 높였다. 물론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먼저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 밀어 부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 지사나 다른 후보의 대선공약 앞머리를 차지하는 것은 비대해진, 혹은 기능이 약화된 정부조직 개편이다. 어느 후보든 효율성을 강조하니 어차피 ‘작은정부’는 귀결점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이 대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작은정부’를 주도하고 여권에 대해 선점했다는 인상을 남기려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윤석열 리스크’는 줄이고, 교착국면의 남북관계를 최대한 활용 ‘문재인 때리기’에 나선 것이지만 성적표는 기대이하이다.
젊은 정치인, 0선의 이 대표가 당 대표로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이었다. 10여 년 동안 보수정당을 대표한 정치인으로 각종 토론회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한 것이 가장 큰 강점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대남’의 박탈감을 대변, 보수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큰 호응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 대표 등장 이후 가장 민감한 윤석열 후보 등 범야권 후보 조정도 잘해 나이에 비해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얻었다.
그러나 이번 여가부 폐지에 이은 통일부 폐지 논란은 이 대표가 신선한 정치인이 아닌 구태의연한 정치인, ‘젠더 이슈’로 남성우위적이고 ‘반통일적’ 정치인이라는 낙인과 함께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다. 이론과 말(빨)만 있지 현장에서는 미숙함만 노출시킨 꼴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시절 윤석열 후보를 위해 (제갈공명이 준비했다는) 금낭묘계(錦囊妙計) 3개를 준비했다고 호언했다.
정작 이 대표 자신을 위한 금낭묘계는 몇 개가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