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문에 한국과 미국의 서명이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정전협정문대로라면 6·25전쟁은 동족상잔이 아니다. 정전협정문은 6·25전쟁은 한국군과 조선군이 싸운 것이 아니라 유엔군과 조선군 그리고 중공군이 싸운 것이다. 그렇다면 6·25전쟁에서 국군은 무엇인가? 6·25전쟁에서 국군은 중국의 인민지원군처럼 독자적인 군대가 아니라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 된다. 중국의 참전은 중국정부군이 아닌 인민지원군이다. 그렇다면 6·25전쟁의 정체성은 조선과 유엔이 맞서 싸운 전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의 정체가 궁금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패망함과 동시에 한반도는 해방을 맞게 된다. 당시 한반도 내에는 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하여 치안권과 행정권을 담당하여 한반도의 혼란을 자주적으로 수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45년 9월, 한반도에는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입성하여 미소 양국은 한반도에 통치안에 대한 포고령을 발표하게 된다.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령에는 “미군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자주적 치안권 및 행정권을 담당했던 건준을 비롯한 인민위원회·조선인민공화국은 부정되었고, 심지어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도 불인정 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부역행위를 한 친일 관료, 경찰, 군인 출신 등 반민족인사들이 대거 미군정에 고용되어 편입된다.
일본이 패망 후 유엔의 신탁통치 결정으로 한반도에 진주한 군대는 유엔군이 아니라 미육군 태평양방면 육군 총사령관 미국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와 소련군 사령관 이반 미하일로비치 치스차코프다. 한반도의 미소군정시대거 끝나고 소련군은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자 물러 났지만 미군은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반도에서 떠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건국 후 76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계속 상주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실질적인 섭정(?)을 하고 있는 권한은 누가 준 것인가?
<정전협정문에 한국과 미국의 서명이 빠진 이유>
6·25전쟁의 정전협정문에 한국과 미국의 전쟁 당사자로서 서명이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문에서처럼 미국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아니었을까? 분단정권을 세워서라도 정권을 잡고 싶어하던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싶은 미국의 의도가 협정문에서 미국과 이승만의 서명을 빠지게 한 것은 아닐까?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참여해 종전이 실현될 경우, 미국이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으며 반공통일 의지에 불타던 이승만은 자신이 원하는 북진 시도와 정전협정이 충돌할 것’에 대한 우려가 서명을 하지 않은 이유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정전협정에 미국이 서명하지 않고 국제연합군 총사령과 미국육군대장 마-크 더불류 클라크’가 서명한 이유는 형식적인 미군정이 끝난 후의 미국이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은 손’이 되려던 미국의 속내가 깔려 있다. 친미세력의 대부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반도에서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 1953년 6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앞서 안정적인 국가 안보를 위해 미국에 상호 방위 조약을 요구했지만, 미국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6월 18일 약 2만 5천 명의 반공 포로를 직권으로 석방시킨다. 이승만의 승부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약속 파괴’라며 비판했고, 덜레스도 이런 ‘이승만 제거’의 제거 필요성을 검토하기까지 했다.
이승만이 이러한 노력(?)은 결국 ‘무기한으로 유효’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1953년 10월 1일 조인된다. 한미방위조약의 정체성은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 동맹의 성격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 또는 공산주의에 확장을 막는다’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미간의 역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약체결 후 한미간의 관계는 군사분야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를 포함하는 대미의존적인 관계가 시작된다. 동맹 초기에 한국은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 따라 주로 시설과 부지 등 간접적 지원을 하였으나 1991년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미국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가 되고 만 것이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1990년 독일과 예멘의 통일로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후 대립이 첨예한 동서 냉전 속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반도는 허리가 잘려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났다. 38선을 경계로 남쪽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서로 다른 국가를 수립, 원수지간이 되어 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옛 소련과 미국 측에 의해 분할 통치되면서 동과 서로 분단됐다가 45년 만인 1990년 10월 3일에 통일됐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8선이 굳게 닫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 분단 누가 시켰나>
한반도를 분단시킨 주범이 누굴까? 국정교과서를 배운 덕분(?)일까? 국정교과서를 배운 세대들은 한반도 분단의 주범을 조선이나 중공이라고 알고 있다. 진보적인 성향의 국민들은 미국과 이승만이 분단을 이끌었다고 주장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국민들은 소련과 김일성이 한반도를 분담시켰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6·26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1950년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는 1948년 8월 15일이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은 같은 해 9월 9일이다. 그러니까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분단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다.
한반도의 분단을 가장 먼저 제안한 당사자는 미국이다. 1948년 8월 미국은 소련에 분단을 제안하고 소련이 받아들임으로써 확정되었다. 신탁통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신탁통지가 소련이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三相會議)’에서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소련이 마지못해 응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된 것이다.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12월 27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는데 반해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고 오보를 함으로써, ‘반탁=애국=친미’로, ‘찬탁=매국=친소’라는 ‘반탁(反託: 신탁통치 반대), 반소(反蘇: 소련 반대)’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단과정을 왜 거꾸로 알고 있을까?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하지만 통일이 되면 잃을 것이 더 많은 사람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누가 통일을 반대할까? 우리가 하나가 되면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 세력이다. 기득권세력들이 권력을 장학하고 있는데 통일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은 겉으로는 통일을 원하는 척 하지만, 동족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분단을 고착화하고 있다. 또 하나. 분단을 원하는 세력들은 외세다. 분단상태이기에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군수 마피아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반대급부를 챙기는 일본이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의 패망을 6·25전쟁 특수로 경기를 회복하지 않았는가?
<통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
통일을 원하는 척 하지만, 통일을 방해한다는 것은 통일방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단계 → 남북연합단계 → 통일국가 완성단계의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가치조차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76년이나 갈라져 살고 있는 민족이 그 첫 번째 단계인 ‘적대와 불신・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신뢰 속에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를 정착시켜 나가면서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 가능한가?
34년이나 되는 늙은 헌법을 개헌하자고 해도 수구언론을 비럿해 국민의힘같은 수구 정당이 반대하는데, ‘남북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제도적 장치가 체계화되어 남북연합 기구들이 창설・운영’하는 남북연합단계가 가능하겠는가?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 남북 의회 대표들이 마련한 통일헌법에 따른 민주적 선거에 의해 통일정부,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두 체제의 기구와 제도를 통합’한 ‘1민족 1국가의 단일국가’를 구성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다. 이런 통일방으로 분단을 걷어내고 통일을 하자는 통일방안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나 무엇인 다른가?
민족의 반쪽 조선의 통일방안은 어떨까?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핵심 내용은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북과 남이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핵심은 첫째, 남북이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면서 연방국가를 세운다. 둘째, 남북은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한다. 셋째, 남북의 대표들과 해외동포 대표들로 ‘최고 민족련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서 조직한 ‘련방상설위원회’가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서 나라와 민족의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한다. 넷째, 통일국가의 국호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으로 정한다. 다섯째,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대외적으로 중립국이 된다… 어느 쪽 통일방안이 더 가능성이 있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