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이 말의 근원은 『손자병법』 「구지편」의 ‘작전은 신속한 것이 으뜸’이라는 ‘병지정주속(兵之情主速)’에 있다. 『삼국지』 「위서 魏書‧곽가전 郭嘉傳」에 보면 “태조가 원상(袁尙) 및 삼군(三郡)의 오환(烏丸)을 정벌하고자 했다. 곽가는 ‘병은 신속함이 으뜸’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릇 모든 용병 작전에서 선수로 상대방을 제압할 때도 신속함이 중요하며, 주동적인 공격에도 속도가 중요하며, 전기를 포착할 때도 빠름이 중요하다. 끈질기게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내선(內線) 작전에서도,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외선(外線)작전에서도 속전속결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천둥과 번개는 귀를 막을 틈도, 눈 깜짝할 틈도 주지 않는다. 군대가 오랫동안 굳게 지키고 있는 성 아래에 노출되어 있으면 날카로움이 꺾여 둔해질 수밖에 없다. 속전속결 해야 비로소 파죽지세를 살릴 수 있다. 따라서 “병은 교묘하지만 느린 것보다, 거칠지만 빠른 것을 중요시한다. 빠르면 기회를 타겠지만, 느리면 변화가 발생한다.”(명나라 『등단필구 登壇必究』)고 말하는 것이다.
명나라 때의 ‘찬집무편(纂輯武編)’에서는 “병은 빠른 것이 상책이다. 전기(戰機)는 그 빠름 속에 숨어 있다. 마치 매로 토끼 사냥을 할 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놓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러시아의 유명한 군사령관 수보로프는 군대의 신속한 행동과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을 ‘전쟁의 진정한 영혼’이라고까지 말했다. “1분이면 전투가 결정 나고. 한 시간이면 전쟁 전체의 승부가 결정 나며, 하루면 제국의 운명이 결정 난다”는 말은 그가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당찬 목소리였다.
엥겔스는 이 점에 대해 더욱 분명하고 철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그는 『터키 전쟁의 진행 과정』이라는 글에서 “나폴레옹이 그렇게 하고 난 연후에 모든 군사 담당자들은 행동의 신속함이 군대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적이 미처 병력을 집중시키기 전에 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는 ‘시간이 곧 군대’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군대의 신속한 행동은 강한 기동력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군 장비의 발전을 기초로 한다. 이것은 동시에 고도의 조직과 지휘술(통솔력)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휘관은 갖가지 계략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해야 함은 물론, 규범을 깨는 행동으로 속도 면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227년, 위나라의 신성(新城-지금의 호북성 방현) 태수 맹달(孟達)은 비밀리에 촉‧오와 결탁하여 반란을 꾀했다. 당시 완성(宛城-지금의 하남성 남양시)에 주둔하고 있던 사마의는 이 중요한 정보를 듣고 맹달을 토벌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관례대로라면 사마의가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낙양에 있는 군주에게 보고를 올려 승낙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완성에서 낙양까지는 왕복 1천6백 리로 가는 데만 보름 이상이 걸리고, 완성에서 맹달이 반란을 꾀하고 있는 상용성(上庸城)까지는 1천2백 리로 가는 데만 약 열흘이 걸린다. 만약 군주의 허락을 받은 다음에 반란을 평정하러 나설 경우, 맹달이 거사한 후 한 달이 지나야 상용성을 구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군과 맹달의 병력은 수적인 면에서 4:1로 위군이 절대 우세했지만, 위군의 식량이 1개월 분량도 남아 있지 않은 반면에 맹달의 식량은 1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많았다. 다시 말해 위군이 낙양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진 다음 움직인다면, 상용성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식량이 바닥 날 판이었다. 그리고 맹달은 이 한 달 동안 응전 준비를 충분히 갖출 것이다. 요컨대, ‘시간’이 쌍방 간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었다.
지혜롭고 꾀 많은 사마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속도전으로 승부를 가렸다. 그는 관례를 무시하고 위왕의 진군 명령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몰래 대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키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삼군을 여덟 부대로 나누어 이틀 거리를 하루에 행군하여 8일 만에 상용성 앞에 이르렀다. 한 달 이상 준비 기간을 벌었다고 만족해하던 맹달은 깜짝 놀라 “거사한지 8일 만에 저쪽 군대가 성 밑에 이르다니 대체 얼마나 빠르기에!”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맹달은 준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성을 수리하는 공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세한 위군의 공격을 받자 군심이 동요되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맹달의 조카 등현(鄧賢)과 부장 이보(李輔) 등은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했고, 성 안으로 진입한 위군은 맹달의 목을 베었다. 1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고, 난은 불과 16일 만에 평정되었다.
사마의의 신속한 행동은 식량 부족의 단점을 피하고 우세한 병력의 장점을 잘 살린 것이었다. 반면에 맹달은 식량이 풍족한 우세한 조건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견고하지 못한 성과 열세인 병력을 메울 시간도 놓치고 말았다.
현대 전쟁에서는 신속함을 더욱 강조한다. 소련이 체코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례는 신속함의 중요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3천만 인구에 평소 10만 정도의 군인을 보유하고 있던 이스라엘이 48시간 내에 무려 40만에 달하는 대군을 전선에 내보낸 것은 전쟁 동원의 속도 면에서 전 세계를 경악시킨 경우였다.
이상은 ‘병귀신속’이 승리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주는 좋은 사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