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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병길과 황태극, 작은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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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典疏通]병길과 황태극, 작은 과실을 덮어 작은 능력으로 보답받는다.

이정랑 (논설위원, 중국고전 평론) 기자 j6439@naver.com 입력 2021/08/04 10:53 수정 2021.08.04 11:17
인물론(72) 알아도 실행하기 어려운 일

사람의 됨됨이를 안 연후에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사람을 알아본 후에 사귈 수 있으며, 그 후에 사람을 쓸 수 있다.

병길(丙吉)은 한 선제 때의 승상이다. 그의 수레를 끄는 마부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에 취했다 하면 앞뒤 가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한번은 술에 취해 승상의 수레에 구토를 한 일이 버려졌다. 그러자 승상부의 관리들이 그를 끌고 가 호되게 질책한 다음 쫓아버렸다. 이때 병길이 말했다.

“술에 취해 실수한 것 가지고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누가 또 그를 받아주겠는가? 좀 참도록 하게. 겨우 수레 덮개가 더럽혀진 걸 가지고 그렇게 모질게 굴 필요가 있겠나?”

마부는 계속 승상부에 남아 수레를 몰 수 있게 되었다. 이 마부는 집이 변방에 있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군사 상황을 수시로 보고 듣고 있었다. 하루는 역참의 기수들이 긴급문서를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부는 이들을 황궁 입구까지 따라가 궁문을 지키는 병사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들어보니 적군이 이미 운중과 대군까지 쳐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마부는 곧장 승상부로 달려가 병길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 적군이 침범한 지역의 태수와 장수들은 대부분 병들고 연로하여 병력을 이끌고 적에 맞설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승상께서는 이에 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병길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인사를 담당하는 관리를 불러 변방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관원들의 인적사항을 자세히 조사하게 했다.

얼마 후 선제는 승상과 어사대부를 불러 적군이 침범한 군현 관리들의 사정을 물었고 병길은 일일이 정확하게 답변했다. 반면에 어사대부는 황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강등되고 말았다. 병길이 이처럼 변방의 군무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한 상황을 파악해둔 것은 전적으로 마부 덕분이었다.

명대의 소설가인 풍몽룡(馮夢龍)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남의 작은 과실을 덮어주면 언젠가는 작은 능력으로 이에 보답하기 마련이다. 원수를 관대하게 대하면 죽어서도 보답을 받는 법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은인에게 감사하는 인정이 있기에 이런 감정을 촉발하기만 하면 반드시 보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과실을 들춰내고 원수의 결점을 찾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청 세종 황태극(皇太極)은 빼어난 재능과 지략을 갖춘 인물로 한족의 인재를 대거 받아들인 명군이었다.

명 왕조의 유명한 장군 홍승주(洪承疇)가 청군과 싸우다가 패하여 포로가 되자 황태극은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둘 생각으로 범문정(范文程)을 보내 투항을 권유했다. 홍승주가 똑바로 선 채로 욕을 하면서 거부했지만, 범문정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내심 있게 고금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이때 갑자기 대들보에서 먼지가 떨어져 홍승주의 옷을 더럽히자 그는 황급히 손으로 먼지를 털어냈다. 범문정은 돌아가 이 사실을 황태극에게 알렸다. 

“홍승주는 죽음을 원치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옷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자 황태극은 친히 홍승주를 찾아와 자신이 입고 있던 표범 가죽 외투를 벗어주며 말했다.

“춥지는 않으시오?”

홍승주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 동안 황태극을 쳐다보다가 찬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정말 하늘이 내린 명군이십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엎드리며 투항을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황태극은 몹시 기뻐하며 그를 받아들여 엄청난 상금을 내리고 주연을 베풀어 위로했다. 여러, 장군들이 이에 큰 불만을 품고 황태극에게 따졌다.

“폐하께서 홍승주를 대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황태극은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며 되물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비바람을 함께 맞은 것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소?”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장군들의 한결같은 대답에 황태극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모두 먼 길을 가는 맹인들인데 지금 간신히 훌륭한 안내자를 하나 얻었소. 그러니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소?”

황태극의 얘기에 장군들은 금세 입을 다물어버렸다. 범문정은 한족의 대학자로서 학문이 깊고 견문이 넓은 인물이었다. 홍승주 역시 명조의 대신으로 계요의 군사 전략을 감독하고 있었고 학식 또한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청나라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하고 통치 방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범문정 같은 지식인들이 만청 황실을 도와 방략을 정해주지 않았다면, 황태극의 말대로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청이 중원을 장악하는 것은 오랫동안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치와 전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는 평화 시기의 전쟁이요, 전쟁은 유혈 시기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정치의 일면을 병가에 대입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와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이다. 모든 유형의 지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이고, 백 가지 지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때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기초로 성패를 예측할 수 있어야 위대한 공업을 세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왕이 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른바 지인(知人) 이라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고 그가 가진 능력을 이해하는 것이고, 때를 안다는 것은 세상사를 통찰하여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 성패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고 때를 아는 능력에 기초하여 군사와 정치 등 모든 분야의 발전과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실현함으로써 가장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실천하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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