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면 칭찬일까 욕일까?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는 “ ‘교과서’라 함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아니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책. 가끔은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낙서장이나 베개로 활용되지만 교과서란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한 자료다.
‘교과서 같은 사람’이란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고 변칙을 용납하지 않는 보증수표와 같은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치혼란의 시대… 변칙이 판을 치는 세상, 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교과서 같은 사람을 ‘믿을 수 있는 보증수표 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을까? 아니면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상종 못할 사람’으로 취급 받을까?
<교과서제도의 변천사>
우리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총독부 주관하에 있던 국정제가 붕괴되면서 잠시 동안 자생적인 교과서 자유발행제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다가 1950년 4월 29일 ‘국정교과용도서 편찬 규정’과 ‘교과용도서 검인정규정’이 공포되고 한국전쟁 이후 제1차 교육과정이 본격적인 시행으로부터 현행 제7차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교과서 정책 기조는 지속적으로 국가의 직간접적인 개입을 원칙으로 하는 국정제와 검 인정제를 병용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교과서제도의 변천사를 보면 1945~ 1955 “국·검정제도 수립기”, 1956~1973 “초등=국정, 중등=검정 교과서 발행기”, 1974~1997 “국정(1종) 교과서 발행기”, 1997~현재 “국정 검정 교과서 발행기”로 구분할 수 있다. 국정이며 검인정 그리고 자유발행제라 무엇인가? 국가의 관여 정도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국정 교과서란 국가가 교과서 저작에 직접 관여하여 만든 교과서요, 검인정 교과서는 민간이 교과서를 집필하되, 국가가 정한 검정 기준을 통과하여야 교과서로 지위를 부여받은 교과서다. 자유발행제는 출판사나 개인이 교과서를 발행하면 정부 등 기관의 별도 검증을 받지 않고 학교 구성원이 검증하고 심의해 선택하는 방식이다.
교과서가 발행된 것은 1895년 이다. 교과서는 발행초부터 검정교과서제도였으나 1972년 10월 유신체제가 들어선 뒤, 이듬해인 1973년 국정제로 바뀌어 1974년 국정 국사 교과서로 배우게 됐다. 국정 교과서 폐해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2007년 다시 검인정 체제로 바뀌었다. 교과서 명칭도 “국사”에서 “한국사”로 바뀌었다. 그 후 2013년~2010 노무현 이명박정권 시절에는 필수교과인 국사는 국정제로, 선택과목인 한국사는 검인정제가 된다. 2011~2016년 이명박박근혜정권 시절에는 다시 검정제 교과서로 배우다가 박근혜정부시절, 국정제로 박근혜정부가 무너지면서 검인정제로 바뀐다.
한국사 교과서의 진술 방법도 5.16혁명→군사혁명→군사정변… 이렇게 ‘혁명’에서 ‘군사혁명’ 또 ‘군사혁명’에서 ‘군사정변’으로 바뀐다. 박정희시절 역사를 배운 세대들은 5·16을 혁명으로 알고, 민주정부시절 역사를 배운 세대들은 5·16을 쿠데타라고 배워 알고 있다면 세대간의 역사인식 차이는 누구 책임인가? 쿠데타의 주인공이 암살당하자 유신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다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5·16을 혁명으로 가르치려다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국정교과서 반대투쟁을 벌였다. 유신정권에 은혜를 입은 세력들은 국정을 농단하다 탄핵을 당한 박근혜를 사면 못 시켜 안달이다.
<다른 나라의 교과서는 ...?>
교과서를 아직도 금과옥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교과서가 국정교과서인지 아니면 검인정 교과서인지 모르고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은 진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다른 나라는 어떤 교과서를 채택해 배우고 있을까? 호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국가교육과정, 교사용 지도서, 교과서가 있어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이 아니라, 만들고 찾고 친구와 함께 탐구하는 공부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외국의 교과서 발행체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9개국 가운데 역사 교과서 등에서 국정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보고서를 보면 미국·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네덜란드·독일 등 6개국은 교과서 자유 발행제를 실시하고 있다. 특정 교과서의 사용을 국가가 의무화하지 않은 것이다.
교과서를 교육선진국처럼 자유발행제를 실현하려면 입시제도부터 폐지해야 한다. 최근 윤석열, 최재형 두 대선후보들의 언행에서 보듯이 능력주의를 정의라는 교육관으로 판검사가 되고 감사원장이 된 사람들…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라는 민주적 가치관이 없이 초중고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대학 학생선발 보조기관으로 대학이 개인을 출세시켜주는 보조기관으로 변질되었음을 실감한다. 학생들의 진로 희망과는 관계없이 교과서를 암기해 점수가 높은 학생 순으로 서열을 매겨 출세 보장의 기구 노릇을 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우리도 선진국이 됐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교과서 없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